'악마를 보았다'…정근우, 패배 속 홀로 빛났다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2.04.18 09: 34

상대하는 팀으로 하여금 절로 '악마'라는 소리가 나올 법한 수비였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2루수 로베르토 알로마는 현역 시절 10차례나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며 최고의 수비수로 군림했다. 오죽했으면 클리블랜드 시절 오마 비스켈과 함께 키스톤 콤비를 이뤄 '미국-캐나다 국경을 커버하는 수비'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바로 '국경 수비대'다. 2루수에게 그보다 더한 칭찬이 있을까.
그렇지만 17일 경기에서 정근우는 미국-캐나다 국경은 못 지키더라도 부산-인천 사이에 검문검색을 펼칠 정도의 수비를 보여줬다. 정근우는 롯데 자이언츠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2루수 1번 타자로 선발 출전,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15일 문학 한화전에 체력안배 차원에서 결장했었던 정근우는 한이라도 풀듯이 투타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특히 이날 정근우의 수비는 발군이었다. 2루 베이스와 1루 베이스 사이의 전 구역에 천라지망을 펼쳤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정근우는 4회 1사 후 박종윤의 1-2루간 빠져나가는 완벽한 안타 코스의 타구를 외야 부근까지 쫓아가며 박종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비록 잡는데는 실패했지만 이날 정근우의 수비 컨디션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2-2로 동점을 허용했던 5회 2사 3루에서 다시 정근우는 날았다. 타석에 들어선 김주찬은 중견수 방향으로 총알같은 타구를 날렸다. 다들 롯데가 역전 득점을 올렸다고 생각한 순간, 정근우는 다이빙 캐치로 타구를 건져냈다.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일어나 1루에 재빨리 송구, 김주찬을 잡아냈다. 가장 빠른축에 속하는 김주찬을 다이빙캐치 후 잡아낼 정도였으니 수비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SK의 위기는 6회에도 이어졌다. 정근우의 수비에 힘입어 2-2 동점을 지키고 있었지만 이재영이 조성환과 박종윤에 연속 안타를 허용해 무사 1,3루 위기에 처했다. 여기서 4번 홍성흔은 몸에 힘을 뺀 채 가볍게 밀어쳤다. 타구는 다소 느렸지만 코스가 좋아서 충분히 안타가 될 만한 상황. 이때 정근우는 빠른 발로 1루측으로 뛰어가 홍성흔을 무사히 땅볼 처리하는데 성공했다.
정근우의 호수비에도 불구하고 이재영의 제구가 흔들리며 1사 만루 위기가 이어졌다. 이때 타석에 들어선 황재균의 타구는 정근우 머리위로 높게 떴고, 이기중 1루심은 인필드 플라이를 선언했다. 정근우가 잡지 않더라도 아웃 카운트가 추가될 순간. 그러나 정근우는 공을 놓쳤고 갑자기 3루 주자 박종윤이 홈으로 뛰기 시작했다. 정근우는 그것을 보고 곧바로 홈에 정확히 송구, 박종윤을 태그 아웃으로 잡아내며 더 이상의 실점 없이 위기를 넘겼다.
경기가 끝난 뒤 정근우에게 인필드플라이 상황에 대해 고의로 낙구를 했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고의낙구를 할 상황은 아니었다. 공을 떨어뜨린 것 뿐"이라고 답하고는 "공을 다시 잡고보니 3루 주자가 뛰더라. 그래서 바로 송구를 했는데 다행히 잡아냈다"며 씩 웃었다. 수비가 되려고 하니 실수도 호수비로 이어진 것.
그렇지만 결국 SK는 롯데에 한 점차로 패했다. 롯데 선수들은 승리하고도 정근우를 '뭐 저런 수비 악마가 다 있나'라는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안타를 몇 개나 건져 냈으며 몇 점을 막아낸 수비를 펼친 것인가. 정근우가 왜 '국내 최고의 공수겸장 2루수'로 불리는지 다시한 번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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