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주자를 채우고 실점없이 막았다. 마지막 순간 가슴 졸이게 한 결자해지의 세이브로 모두를 울리고 웃겼다. 한화 '광속 마무리' 데니 바티스타(32)에게 지난 17일밤은 공포와 환희의 연속이었다.
바티스타는 17일 청주 LG전에서 7-6으로 리드한 9회초 마운드에 올랐다. WWE 프로레슬러 언더테이커 테마곡 '죽음의 종소리'와 함께 등장하며 좌중을 장악한 바티스타는 그러나 첫 타자 서동욱을 상대로 초구부터 크게 원바운드 되는 공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이어 2구째 슬라이더마저 서동욱의 다리를 맞혔다.
설상가상으로 후속 이대형을 상대로 초구를 던지기 전부터 보크를 범했다. 투구를 위해 멈춘 상황에서 오른 다리를 투수판에서 빼는 바람에 보크를 범한 것이다. 순식간에 무사 2루. 흔들린 바티스타는 이대형을 상대로 직구 4개를 던졌지만 모두 스트라이크존 크게 벗어나는 볼이 됐다. 6연속 볼로 무사 1·2루. 1점차에서 동점에 역전 주자까지 나갔다.

박용택을 헛스윙 삼진 처리하며 한숨 돌리는가 싶었지만 이진영에게 중전 안타를 맞고 1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정성훈을 6-4-3 병살타로 유도하며 팀의 3연패 탈출과 함께 시즌 첫 세이브를 수확했다. 짜릿한 해피엔딩으로 경기를 마무리하며 한화와 청주팬들을 들었다 놓았다.
뭐가 문제였을까. 바티스타는 "마운드의 흙이 파져 있어 밸런스가 흐트러졌다. 그래서 제구를 잡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와 호흡을 맞춘 포수 신경현은 "바티스타가 긴장했다. 때문에 제구가 잘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이없는 보크를 범한 것도 결국에는 긴장한 탓이었다.
또 하나는 바티스타의 특이 체질이다. 그는 지난해에도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고 극복한 경우가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 바티스타는 "나는 경기에 자주 나가야 몸 빨리 풀린다. 너무 오래 쉬면 제구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동안 등판 기회를 잡지 못한 바티스타는 팀이 크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등판을 자처하기도 했다. 일정하게 자주 등판해야 컨디션 유지가 되는 타입이다.
위기를 극복할수 있었던 데에는 포수 신경현의 노련한 리드도 한 몫했다. 바티스타는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볼을 남발했다. 특히 직구 제구가 되지 않았다. 지난 13일 잠실 KIA전에서 16연속 볼을 던진 LG 레다메스 리즈가 연상된 순간. 하지만 신경현은 곧바로 투구 패턴을 바꿨다. 제구가 되지 않는 직구를 버리고 커브로 볼 배합에 변화를 주며 분위기를 바꿨다. 박용택을 커브로 헛스윙 삼진 처리한 바티스타는 정성훈 상대로도 1~2구 모두 커브로 잡은 뒤 결정구마저 각도 큰 커브로 던져 유격수 앞 땅볼에 이은 병살타를 유도해냈다.
신경현은 "상대 타자들이 직구만 노리고 들어왔다. 직구 제구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직구를 던지게 할 필요 없었다. 오히려 변화구 제구가 잘 돼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했다. 위기의 순간 투수 마음과 특성을 파악한 신경현의 재빠른 볼 배합 변화가 만들어낸 극적인 위기 탈출. 바티스타의 '결자해지 세이브'는 노련한 포수 신경현의 변화무쌍한 리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슴 졸이는 세이브를 거둔 후 바티스타는 "팀이 연패를 끊어 너무 기쁘다. 이번주 6경기 중 팀이 4승을 거뒀으면 좋겠다. 팀이 이기는 경기에서 모두 세이브하고 싶다"며 활짝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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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