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미트가 딱딱한거야. 아직 제대로 길들이는 법을 모르네".
경기 전 고정식 두산 베어스 배터리코치는 데뷔 첫 선발 출장을 앞둔 신예 포수의 미트를 정성껏 길들여주었다. 연습용 미트였으나 선수가 공을 받는 감을 제대로 익힐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배려였다. 고 코치의 경기 전 정성은 이 유망주 포수의 맹활약으로 헛되지 않았다. 두산 베어스 신고선수 출신 5년차 포수 최재훈(23)의 18일은 '생애 최고의 하루'였다.
최재훈은 18일 잠실 삼성전에 7번 타자 포수로 선발 출장하며 데뷔 후 처음으로 1군 경기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주전 포수 양의지(25)이 왼 종아리 타박상으로 이날 경기에 결장함에 따라 최재훈에게도 기회가 온 셈이다. 그리고 최재훈은 4회 1타점 우중간 선제 결승타에 선발 이용찬의 6이닝 무실점 선발승을 이끈 데다 4-3으로 쫓긴 9회 2사 2루서 득달같은 2루 견제로 주자 손주인의 횡사를 이끄는 '슈퍼 세이브'로 이름값을 부쩍 높였다.

경기 후 최재훈은 "이명수 타격코치께서 몸쪽은 버리고 바깥쪽 공을 노리라고 하시면서 '직구 대신 변화구를 노려라'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그런데 마침 윤성환 선배의 공이 바깥쪽 변화구로 날아와 친 것이 안타로 이어졌다"라며 데뷔 첫 결승타를 되돌아보았다. 어렵게 잡은 1군에서의 선발 출장 기회를 제대로 살렸기 때문인지 상기된 표정이 역력했다.
데뷔 후 처음으로 1군 무대에서 처음과 끝을 장식한 그는 이날 경기서 바운드된 공이 많아 블로킹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굴절되어 프로텍터를 때리는 공이 많아 블로킹이 쉽지 않았을 텐데도 최재훈은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답했다.
"투수가 바운드되는 공을 던지더라도 몸을 던져 막는 것이 포수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야 투수가 자기 공을 믿고 더 자신있게 던질 수 있을 테니까요".
"선발로 나온 (이)용찬이형의 포크볼이 좋아서 이를 적극 구사할 수 있도록 리드했다. 중반부터는 직구도 섞어가며 삼성 타자들을 상대했다"라며 선발 이용찬에게 주문한 리드에 대해 밝힌 최재훈. 그는 팀 2년 선배이자 경찰청 2년 선배. 그리고 현재 팀의 주전 포수인 양의지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은 동시에 자신의 감정 제어 실패로 3실점으로 물러난 선배 투수 서동환(26)에 대한 미안함도 밝혔다.
"(양)의지형이 뛰어야 할 자리에 제가 나가서 꼭 의지형 만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의지형에게 볼배합하는 능력 등 여러 가지를 정말 많이 배웠어요. 경기 초반부터 설레고 긴장되다가 4-0으로 7회초를 시작하는 바람에 들떠서 (서)동환이 형과 호흡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것은 정말 미안하네요".
지난 8일 잠실 넥센 개막 2차전서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날 믿어주신 감독님께 감격했다"라고 이야기했던 최재훈. 18일 경기가 끝나고도 최재훈의 눈시울은 붉게 물들어있었다. '혹시 또 운 것인가'라며 짓궂게 묻자 최재훈은 "아니에요. 그런 거"라며 손사래쳤다.
"TV 인터뷰를 하는 데 부모님 이야기가 나와서 저도 모르게 울컥했어요. 정말 제게 많은 것을 주시고 힘도 많이 불어 넣어주셨는데 제가 제대로 한 것이 없었거든요. 오늘(18일) 그래도 효도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앞으로는 부모님께 더 많이 효도하고 싶어요". 어린 나이에도 투수들을 의젓하게 리드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포수였으나 마스크를 벗은 최재훈은 그저 착하고 순한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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