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프 프리미어리그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주장 완장을 팔에 둘렀고 200경기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팀에 충실하기 위해 국가대표에서도 은퇴했다. 박지성(31)에게 남은 것은 이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뿐이다.
하지만 맨유의 박지성을 둘러싼 상황은 점점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최근 6경기 연속 결장으로 인해 팀 내 입지가 좁아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 휩싸여 있다.
설상가상으로 맨유가 박지성과 포지션이 겹치는 '천재 미드필더' 니콜라스 가이탄(24, 아르헨티나)의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박지성 위기론'이 또다시 대두되고 있다. 과연 박지성은 정말 위기에 처한 것일까.

박지성 위기론은 꾸준히 있어 왔다. 그러나 이번에 불거진 위기론의 핵심은 맨유가 허리 보강 작업에 들어가면서 세대교체의 시즌을 맞이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약해진 중원을 보강하고 보다 공격적인 스쿼드를 꾸릴 필요성을 절감했다. 퍼거슨 감독이 그리는 공격축구의 첫 퍼즐은 애슐리 영의 영입이었다. 영은 맨유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꾸준히 주전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맨유는 영의 영입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우승을 노렸던 UEFA 챔피언스리그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칼링컵, FA컵 등 각종 컵대회에서도 줄줄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심지어 유로파 리그마저도 16강에서 탈락했다.
퍼거슨 감독이 가이탄의 영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좌우 측면에서 중앙 미드필더까지 소화가 가능한 가이탄은 공격적인 스쿼드를 구성하고자 하는 퍼거슨 감독의 청사진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맨유가 꾸준히 루카 모드리치(토튼햄)나 웨슬리 스네이더(인터 밀란)와 연결되어 왔던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가이탄의 영입으로 인해 실질적인 위협을 느낄 선수들은 따로 있다. 중앙 미드필더 자원인 톰 클레벌리나 안데르손 같은 선수들이다.
물론 4-4-2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맨유에서 가이탄은 중앙과 측면을 넘나드는 미드필더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프리시즌부터 좋은 활약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영과 은퇴했다 복귀한 노장 폴 스콜스에 밀려 출전 기회를 놓치고 있는 박지성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맨유가 가이탄에게 바라는 역할과 박지성에게 바라는 역할은 다를 수밖에 없다. 창의적인 공격형 미드필더로 합류하게 될 가이탄과 안정적인 수비형 윙어로 중원을 조율하는 박지성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둘의 쓰임새가 다르다는 뜻이다. 측면 미드필더 포화 상태에도 불구하고 박지성이 쉽게 '정리'되지 않으리라고 믿는 이유다.
오히려 더 신경쓰이는 점은 박지성이 맨유에서도 '노장' 반열에 올라섰다는 사실이다. 2005년 7월 맨유에 입단한 박지성은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8시즌째 팀에 남아 있고,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참의 위치에 올랐다.
맨유에서 박지성보다 많은 시즌을 보낸 선수는 이제 라이언 긱스(39, 1990년 입단)와 폴 스콜스(38, 1994년 입단) 웨인 루니(27, 2004년 입단) 대런 플레처(28, 2001년 입단) 리오 퍼디난드(34, 2002년 입단) 5명에 불과하다.
박지성의 '맨유 역사'는 자랑스러운 기록이자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특히 체력 소모가 가장 심한 포지션인 미드필더로서 서른 하나라는 나이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많은 이들이 '박지성 위기론'을 진심으로 우려하는 이유다.
박지성의 가장 큰 장점이자 무기는 지치지 않는 체력이다. '산소탱크'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왕성한 활동력과 타고난 심폐지구력으로 상대를 지치게 하는 선수가 박지성이다. 경기 내내 왕성하게 활동하며 상대를 압박하는 박지성의 플레이스타일은 체력적인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박지성은 확실한 쓰임새가 있는 선수다. 퍼거슨 감독은 누구보다 박지성의 쓰임새를 잘 알고 있다. 맨유가 쉽게 박지성과 결별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이번 주말 36라운드 맨체스터 시티전에 박지성이 출전한다면 이런 추측은 더 확실해질 것이다.
선두 맨유로서는 리그 우승을 다투고 있는 맨시티를 맞아 보다 안정된 수비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맨유에 있어 가장 안정적인 수비력을 보일 수 있는 자원 중 한 명은 바로 박지성이다. 최근 6경기 연속 결장에도 불구하고 박지성의 맨시티전 출장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점칠 수 있는 이유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박지성 위기론이 현실로 다가올 경우 말이다. 박지성 본인은 맨유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 싶다고 이야기한 바 있지만, 그럴 경우 팀을 옮기는 것 역시 괜찮은 선택이라고 본다. 레알 마드리드의 라울 곤살레스가 조세 무리뉴 감독의 '세대교체'로 인해 고심 끝에 분데스리가 샬케04로 이적했던 것처럼 말이다.
정든 베르나베우를 떠나 샬케04의 유니폼을 입은 라울은 자신이 여전히 '끝내주는 선수'임을 매 경기마다 증명했다. 자신을 보다 필요로 하는 팀에서 뛰면서 선수 생활의 또다른 커리어를 더하는 것은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일이다.
챔피언스리그 유로파리그 칼링컵 FA컵 탈락으로 인해 맨유의 이번 시즌은 유난히 빨리 끝날 전망이다. 겨우 4경기만을 남겨놓고 있는 맨유의 2011-2012 시즌, 남은 경기에서 박지성이 얼마나 많이 출전하느냐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이제 박지성에게 중요한 것은 1, 2경기에 더 출전하는 것이 아니다. 박지성은 맨유라는 팀의 확실한 카드가 되어줄 수 있을지, 아니면 또다른 도전에 대한 가능성을 품고 색다른 길을 모색해야 할지 고려해야 한다. 다시 고개를 든 '박지성 위기론'을 마냥 일축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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