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선발 투수가 많은 공을 던질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 타자들이 괴롭혀줬으면 좋겠다".
감독의 주문에 타자들은 제대로 작전을 이행하는 수준급 경기력을 선보였다. 상대 투수에 대해 부족한 배경지식으로 섣불리 초구를 건드리는 일 없이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리고 노리는 공이 왔을 때는 과감하게 때려내는 융통성 갖춘 공격으로 시즌 첫 3연승에 성공했다. 김진욱 감독이 이끄는 두산 베어스의 경기력이 점차 좋아지고 있다.
두산은 19일 잠실 삼성전서 1회 김동주의 2타점 결승타와 선발 더스틴 니퍼트의 7이닝 2실점 호투에 힘입어 7-2로 승리했다. 두산은 이날 승리로 시즌 전적 6승 1무 3패(2위, 19일 현재)를 기록하며 삼성과의 홈 3연전을 모두 승리로 장식했다. 잠실 홈경기만 따지면 지난 8일 넥센전부터 4연승 행진 중이다.

경기 전 김 감독은 상대 선발 투수가 처음 보는 미치 탈보트(29)라는 점에 주목했다. 2010년 팀 컬러가 장타 중심으로 바뀌면서 두산 타선의 무게감은 묵직해졌으나 상대적으로 처음 상대하는 선발 투수나 선발 표본이 적은 투수, 신예 투수들에게 약한 면모를 보였던 두산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김 감독은 경기 전 "지난번 박찬호(한화) 등판 때처럼 섣부른 공격으로 상대 투구수를 줄여주기보다 최대한 많은 공을 던지게 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타자들이 상대 선발 투수의 진을 빼놓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타격감이 가장 좋은 선수이던 정수빈을 빼고 볼을 골라내는 능력이 좋은 임재철을 2번에 배치하는 등 색다른 타순 변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0-1로 뒤진 1회말 두산은 선두타자 이종욱은 6구까지 대결을 이끈 끝에 수비 중심이 높은 탈보트가 미처 막지 못한 타구로 중전 안타를 때려낸 뒤 2루 도루까지 성공시켰다. 퀵 모션이 1.6초 대로 느린 탈보트의 약점을 잘 찔렀고 임재철은 공을 기다리는 전략을 펼치며 볼넷으로 걸어나가 탈보트를 더욱 압박했다.
아직 쇄골 통증으로 제 컨디션이 아닌 김현수는 파울 커트 세 개로 탈보트를 괴롭힌 뒤 우익수 뜬공으로 선행 주자의 진루를 도왔다. 그리고 김동주는 노리고 있던 안쪽 코스 공을 잡아당겨 좌익수 방면 2타점 안타로 2-1 역전을 이끌어냈다. 초구부터 어이없이 때려내며 범퇴당하던 1주일 전과 달리 두산 타선은 끈질긴 모습과 노림수 타격으로 탈보트를 괴롭혔다.
3회에도 두산은 김현수와 김동주의 연속 중전 안타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특히 김동주의 안타 때는 1루에 있던 김현수가 빠른 스타트와 부드러운 투 베이스 러닝으로 순조롭게 3루에 안착했다. 이미 1루에서 2루를 노린 스타트가 좋았고 가속도가 잘 붙은 만큼 과감하게 달리는 노력을 높게 살 만 했다. 과감한 주루로 상대를 압박한 김현수의 수훈까지 더해 두산은 최준석의 중전 안타와 손시헌의 우전 안타, 최재훈의 좌익수 희생플라이로 5-1까지 달아나며 승기를 제대로 잡았다.
경기인 출신으로 매니저부터 단장까지 우뚝 선 김태룡 두산 단장은 경기 후 “3연전 경기력이 다 좋았다. 이것이 바로 팬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두산 야구”라며 웃음을 지었다. 개인 성적을 위한 한 방만을 의식하기보다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리고 노림수가 맞으면 그대로 공략하는 바람직한 타격으로 상대 선발투수를 괴롭혔고 누상에서도 한 베이스 더 가려는 노력까지 숨어있는 두산 특유의 야구가 나왔기 때문이다.
현재 두산의 팀 홈런은 3개로 KIA, 한화와 함께 공동 최하위다. 그러나 홈런이 그 팀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홈런만 노리는 획일적인 타격을 고수하기보다 영리한 소프트웨어를 갖춘 타자들의 활약이 함께했을 때 더욱 팀 승리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삼성과의 3연전 승리는 잃었던 두산 타자들의 근성과 센스가 물씬 배어나온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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