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굴당' 허구판 속 눈길 끄는 '현실 캐릭터' 셋
OSEN 김경민 기자
발행 2012.04.22 16: 05

KBS 2TV 주말연속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하 '넝굴당')이 시청률 30%를 유지하며 주말 황금시간대의 승기를 펄럭이고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있는 '넝굴당'은 매회 빵 터지는 코믹함과 가족극의 따뜻함, 스토리의 연결고리가 주는 흥미진진함까지 갖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요즘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순둥이인 방귀남(유준상 분)과 정말 드라마틱하게 '넝쿨째 굴러온 시댁'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기가 막힌 전개는 채널을 고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넝굴당'은 이러한 허구적인 스토리와 캐릭터를 중심축으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곳곳에 매력적인 현실 포인트를 거머쥔 주인공들이 있다. '넝굴당'의 매력을 한층 드높이는 '현실 캐릭터' 세 사람을 살펴보자. 

1. 능력자 며느리, 차윤희-민지영
시댁이란 존재 자체가 싫어 '능력있는 고아'를 택한 차윤희(김남주 분). 그녀가 늘 버릇처럼 "이상한 사람들이야"라고 투덜거리던 앞집 식구들이 어느날 갑자기 시댁 식구가 되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기겁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차윤희는 자신에게 드라마같이 찾아온 시댁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대처해나간다. 자신의 일을 소중히 생각하는 차윤희는 시댁의 경조사에 참여하기 보다는 신용카드를 내밀며 성의를 표한다. 시댁의 제삿날, 일 때문에 한참 늦은 차윤희에 한소리 하려던 시어머니 엄청애(윤여정 분)는 제사 비용을 다 댔다는 차윤희의 말에 오히려 어쩔줄 몰라 한다.
민지영(진경 분)은 무능력한 남편과 허영심 많은 시어머니 사이에서 꼿꼿한 며느리다. 교사에 재직하는 그녀는 남편을 아기같이 다루며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친다. 시어머니의 잔소리나 불만에도 어느 하나 틀린 말 없이 조목조목 짚어가며 따져 대 승리한다.
여성들이 자신의 전문 직장을 갖고 활발한 사회활동을 시작하면서 시댁과 커리어우먼 며느리 사이의 갈등은 우리들 모습 그대로다. 더군다나 뚱딴지 같이 맺어진 시댁-며느리 관계에 쉽게 정 붙이고 마음을 연다는 것이 더 거짓말 같다. 물론 극의 전개와 함께 시댁과 차윤희 사이 장벽이 허물어지고, 마음이 열리며 진정한 가족이 되는 모습이 그려질 것이라 예상되지만 시집살이 보다 '며느리살이'가 빈번한 요즘, 시댁 속에서 덩그러니 따로 노는 차윤희의 모습은 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2. 주몽 엄마는? 김을동! 방장군
방장군(곽동연 분)은 박학다식의 대명사 방정배(김상호 분)와 그런 남편을 동경하며 '모시는' 고옥(심이영 분)의 아들이다. 방장군은 극의 흐름 중간에 튀어나와 백치미 가득한 발언을 툭툭 내뱉어 폭소를 자아낸다.
"주몽의 엄마는 김을동, 왕건은 최수종!"이라며 당당하게 대답하다가도 "대조영도 최수종?!"이라며 자신의 대답에 스스로 혼란에 빠진다. 극 중 중학교 3학년으로 설정된 방장군은 초등학생만도 못한 상식 수준으로 극적인 요소를 더한다. 하지만 극적인 캐릭터 구축 때문에 조금 오버된 요소를 덜어놓고 나면 요즘 아이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방장군 같이 역사적 인물의 이름보다는 사극 속 그 인물을 연기한 배우를 인식하는 것은 다반사. 굳이 그런 것들을 몰라도 사는 데 지장없는 현실 속에서 '방장군들'은 계속 생겨나고 있다. 방장군의 바보같은 모습에 웃고 넘어가지만 이는 씁쓸한 현실을 아프게 긁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3. 허세만이 살길, 윤빈
윤빈(김원준 분)은 바람이 불었다 하면 긴 머플러를 휘날리며 셀카를 찍어댄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오직 셀카만이 자신의 존재감을 세상에 입증한다는 듯 목숨 걸고 찍는다. 스타일 망가지는 것은 곧 죽어도 싫다. 무엇을 하든 남의 시선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완벽남'인 배우 김원준의 이미지가 허세를 부리며 망가지니 큰 재미를 선사한다.
이런 행동으로 코믹 캐릭터로 자리매김한 윤빈은 '허세남'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허세'는 이미 '넝굴당'이 시작하기 전부터 유행처럼 전파된 단어다. 밥 먹을 돈 아껴가면서 밥값을 웃도는 가격의 커피를 마신다. 그 커피 전문점을 방문 했을 때 인증 사진은 필수. '남들이 보는 나'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사니 스트레스를 더 받기 마련이다.
극 중에서는 상상을 뛰어 넘는 황당한 허세로 시청자들의 웃음을 터뜨리지만, 현실의 윤빈들은 괴롭기만 하다. 극 중 윤빈도 궁핍한 생활을 이기지 못해 허세를 벗고 길거리 가게 홍보에 나서기 시작한다. 이런 모습이 마냥 윤빈을 재밌게만 꾸미는 설정들인지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 시대에서 현대로 시간 여행 온 왕세자의 로맨스, 황실이라는 배경 속에서 남남북녀가 펼치는 사랑들이 휘어 잡고 있는 안방 극장. 여기서 '넝굴당'은 같은 허구판을 펼쳐놓고도 여기저기 심어진 현실 캐릭터들로 친근감은 물론 공감까지 얻어내고 있다.
드라마는 허구다. 그렇지만 현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다. 너무도 동떨어진 것 같아 마음 놓고 보다가도 어느 순간 우리 삶을 조명하고 있는 '넝굴당' 때문에 한 시도 정신을 차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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