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시즌 벽두에 계속된 호투에도 불구하고 승리와 연을 맺지 못하고 있는 한화 류현진의 성적이 세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모든 감독들이 탐을 낼 만큼 10승, 그 이상의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류현진이 투타에서 엇박자로 돌아가고 있는 팀의 경기력 사이클로 인해 아직 1승도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에 야구팬들의 동정표가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류현진은 지난 4월 7일 사직에서 열린 롯데와의 시즌 개막전에 선발로 나와 6이닝 동안 3실점(2자책점)하며 퀄리티스타트 기준을 채웠지만 1득점에 그친 타선의 비 협조로 패전투수가 되었고, 두 번째 등판한 13일 SK와의 문학경기에서는 8이닝 동안 무려 13개의 탈삼진을 뺏어내는 괴력투를 선보였지만 역시 공격력이 받쳐주질 않아 연장 끝에 축구스코어인 0-1로 주저앉는 팀의 패배를 지켜봐야만 했다.
이후 6일 만에 청구구장 홈에서 첫 등판한 류현진은 LG를 상대로 9이닝 동안 9개의 삼진을 솎아내며 5피안타 1실점의 역투를 펼쳤지만 또다시 방망이는 침묵했고, 팀은 연장 10회에 또 한번 무릎을 꿇고 말았다. 패색이 짙던 9회말에 터진 장성호의 동점 솔로홈런 덕에 패전투수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행운(?)이었다.

이상 3경기에서 류현진이 거둔 성적표를 살펴보면 평균자책점은 1.17. 투구이닝은 23으로 경기당 평균투구회수가 7.6이닝이며, 경기당 평균 9개에 해당하는 총 27개의 탈삼진을 잡아냈다. 또한 6이닝 3실점 이하의 전 경기 퀄리티스타트는 유지는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다. 그렇지만 기록은 1패가 전부다.
지난 2011년에도 한화가 초반 11경기에서 2승 9패를 기록하고 있을 무렵, 류현진은 개막과 함께 내리 3패를 기록했었다. 하지만 그때의 투구내용과는 다른 모습이다. 불안정했던 작년과 달리 이번 시즌은 상당한 안정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더욱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는 한화의 공격력과 집중력에 팬들은 아쉽다.
이번 류현진처럼 과거 잘 던지고도 승수와는 거리가 멀었던 역사 속의 투수들은 또 누가 있었을까?
대개 한 시즌 평균자책점 10걸 안에 들려면 일단 3점 대의 평균자책점을 유지해내야 한다. 물론 투수력이 강세를 보이면 3점대 초반, 반대로 타력이 득세를 했던 시즌에는 4점대의 평균자책점도 10위 안에 들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3점대 중반의 평균자책점이 커트라인이 되곤 했다.
물론 규정투구회수(시즌 팀 경기수와 동일)를 넘겨야 하는 것은 필수조건으로 구원등판보다는 선발투수의 임무를 주로 맡았던 투수들로 다시 범위를 좁혀보았다.
불운의 투수를 논할 때면 가장 가깝게 비견되곤 하는 2007년 KIA의 윤석민이 먼저 떠오른다. 그 해 윤석민은 26경기에 선발로 나와 3.7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지만 승수는 고작 7승뿐이었다. 반면 패수는 3배에 가까운 무려 18패. 그 당시 윤석민도 타선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외로운 싸움을 일년 내내 이어갔었다.
2008년 SK의 외국인투수 케니 레이번에도 눈길이 간다. 26경기 선발 등판해 3.30의 준수한 평균자책점을 유지했지만 단 5승에 머물러야 했다.
그 이전으로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3년 21경기에 등판해 2.42의 준수한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면서도 8승에 머문 LG의 김태원, 1987년 24경기에 선발로 나와 평균자책점 2.61의 짠물투구를 뿌려댔지만 역시 8승이 전부였던 계형철(OB) 투수가 있었다.
프로 원년(1982년) 개막전과 시즌 최종전인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이종도와김유동에게 각각 만루홈런을 얻어맞고 눈물을 쏟았던 비운의 좌완 이선희가 1985년 MBC 청룡 소속으로 18경기에 선발 등판하고서도 고작 5승에 그치며 억세게 운 없는 투수로 지목됐던 이력도 보인다. 그 해 이선희의 시즌 최종 평균자책점은 2.28이었다.
그늘이 있으면 양지도 있는 법. 지금까지 둘러본 투수들의 불운과 달리 역으로 형편없는 투구내용을 보이고서도 타선의 화끈한 지원 덕에 쏠쏠히 승수를 쌓아갔던 투수들도 보인다.
형편없는 평균자책점에 10승 이상을 챙겨간 투수의 맨 앞줄에는 해태의 곽현희가 서 있다. 1999년 곽현희는 21경기에 선발로 나와 6.15라는 퇴출 급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는데, 그러면서도 그는 무려 11승이나 챙겨 10승대 투수의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 다음으로는 삼성의 김진웅이 자리한다. 역시 1999년 31경기에 나와 5.40의 평균자책점으로 11승을 거뒀다. 이 해에 강병규(두산) 역시도 5.21의 평균자책점으로 13승을 가져갔다.
1985년 35경기에 선발로 나와 5.3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11승을 따냈던 청보의 장명부도 있었지만 여기에 따라붙은 시즌 25패로 인해 행운의 투수로 분류하기에는 어딘가 어색한 기록이라 하겠다.
한편 2009~2011년에 걸쳐 행운의 여신이 자꾸만 거리를 두는 사이 18연패까지 몰리며 또 다른 기록의 중심에 섰던 심수창(넥센)의 이름도 보이는데, 2006년 LG 소속으로 24경기에 선발 등판해 4.38이라는 그저 그런 평균자책점을 남겼지만 그 해 심수창은 10승 고지에 오를 수 있었다.
각 구단의 전력분석 팀이 만들어내는 고과자료를 보면 승수로 말하는 다승보다는 투구내용을 대변하는 평균자책점(방어율)에 더욱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위에서 본 것처럼 다승은 상당 부분 운 적인 요소가 개입되어야 하는 기록인데 반해 평균자책점은 오로지 투수 자신의 능력으로만 일굴 수 있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있다. ‘투수는 경기에서 팀이 지는 것을 막아줄 수는 있어도 결코 이기게 만들지는 못한다.’ 투수라는 자리는 아무리 잘 던져도 공격을 담당하는 동료들의 도움 없이는 ‘0-0’ 스코어 이상을 결코 기록해낼 수 없다는 말이다. (투수가 타자로 나와 홈런을 쳐서 이기면 된다고 하지만, 특정 선수 개인이 아니라 일반적인 투수 포지션상의 특성을 말하는 것이다)
한화의 류현진이 작금에 처한 현실이 그렇다. 최근 4년간(2008~2011년) 한화의 팀 성적은 5-8-8-7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가운데 류현진은 2006년 데뷔 이후 줄곧 한화의 에이스로서 흔들림 없는 고군분투로 선두에서 팀을 이끌어오고 있다. 현재의 페이스라면 류현진이 시즌 첫 승을 기록하게 될 날이 곧 도래하겠지만, 팬들을 속 터지게 하는 그의 다승기록을 대신하여 올 시즌 그의 평균자책점을 비롯한 탈삼진, 퀄리티스타트 등 류현진과 관련한 여타 기록에 주목해 보는 것은 또 어떨는지…. 야구기록의 다양성이 주는 기쁨과 혜택이 이럴 때 더욱 요긴하게 쓰여졌으면 한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류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