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공을 앞세운 중간계투-셋업맨-마무리 투수가 연이어 1이닝 씩을 맡으며 팀의 한 점 차 접전 신승을 이끌었다. 한 명은 '재기', 한 명은 '상승세', 한 명은 '명불허전'이라는 느낌을 던지며 승리 계투가 되었다. 두산 베어스의 좌완 이혜천(33), 우완 셋업맨 노경은(28), 마무리 스캇 프록터(35)가 연이어 150km대 광속구로 비룡 타선을 잠재웠다.
두산은 지난 24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벌어진 2012 팔도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SK 와이번스전서 5회 결승점을 잘 지키며 2-1로 신승했다. 두산은 이날 승리로 시즌 전적 7승 1무 4패(24일 현재)를 기록하며 지난해 9월 3일부터 이어진 SK전 3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특히 6이닝 1피안타 1실점으로 호투한 선발 임태훈의 바통을 이어받은 세 명의 투수들이 위력적인 구위로 합작 3이닝 노히트 피칭을 펼쳤다. 7회, 8회를 막은 이혜천과 노경은은 삼자범퇴로 1이닝씩을 담당했고 마무리 프록터는 볼넷 한 개를 내주기는 했으나 탈삼진 1개 포함 무실점으로 경기를 승리로 매조졌다.

구단 자체 전력분석 결과 이혜천의 최고 구속은 150km였으며 노경은과 프록터는 각각 151km를 기록했다. 공의 빠르기가 주는 내실은 사실 그렇게 큰 편은 아니다. 그러나 오랜만에 광속구 트리오로 한 점 차 승리를 거둔 두산임을 감안하면 결코 의미없는 경기는 아니다.
3년 전이던 2009시즌 KILL 라인을 갖췄을 때 이재우-임태훈-이용찬이 연달아 나왔을 때나 가능했던 '150km 직구 트리오'의 승리 계투 운용이었기 때문이다. 제구되지 않은 빠른 직구보다 낮게 스트라이크존을 걸치는 140km대 직구가 코칭스태프에게 더욱 믿음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빠른 공으로 타자와 힘 대 힘 대결을 펼치는 계투요원의 존재감이 팬들에게 주는 쾌감은 야구 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 중 하나다.
특히 지난해 걷잡을 수 없는 부진의 늪에 빠졌던 이혜천이 150km의 공을 던졌다는 점은 선수와 팀에 긍정 요소로 작용하기 충분하다. 일본 야쿠르트서 2시즌을 보낸 뒤 지난해 두산으로 복귀한 이혜천은 스리쿼터형 투구폼에서 사이드스로에 가깝게 바뀌어 있었다. 제구 기복은 일본 진출 이전에 비해 덜했으나 빠른 공의 위력이 뚝 떨어진 데다 왼손등 골절상까지 겹치며 지난 시즌 1승 4패 1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6.35에 그쳤다.
올해 시범경기와 시즌 초반에도 이혜천의 공은 145km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17일 삼성전서부터 이혜천은 무게중심을 빠르게 옮기지 않고 리듬에 맞춰가는 투구폼에 다시 스리쿼터에 가깝게 팔 각도를 올리면서 구위를 회복 중이다. 오랜만에 150km까지 스피드건에 새긴 이혜천은 현재 4경기 연속 무실점 중이다. 이혜천은 '150km이 기록된 것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스피드건 고장 아닌가"라며 유쾌하게 웃은 뒤 "올 시즌 반드시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정진하겠다"라고 밝혔다. 이혜천은 현재 6경기 2홀드 평균자책점 4.26(24일 현재)을 기록 중이다.
지난해 연투 부하 속 44경기 5승 2패 3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5.17로 분전했던 노경은의 회복세도 김진욱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웃음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일본 가고시마 2차 전지훈련부터 시범경기까지 150km대 직구를 거침없이 던지던 노경은은 시즌 개막과 함께 흔들리며 아쉬움을 남겼다.
첫 세 경기 동안 매번 실점하며 셋업맨 기대치에 걸맞지 않는 모습으로 고개를 떨궜던 노경은은 SK전에서 오랜만에 150km 이상을 스피드건에 새겼다. "스피드보다 좋은 투구 밸런스를 시즌 끝까지 잘 이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며 가장 좋은 투구 밸런스에 중점을 두고 있는 노경은은 현재 세 경기 연속 무안타 무실점 행진 중이다. 그의 시즌 성적은 7경기 1승 1홀드 평균자책점 4.26이다.
뉴욕 양키스 시절 마리아노 리베라의 앞선을 지키던 프록터는 4경기 3세이브 평균자책점 2.25로 활약 중이다. 이닝 당 주자 출루 허용률(WHIP) 1.25는 다소 아쉽지만 아직 박빙 순간에는 실점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프록터는 메이저리그 시절 과부하 여파로 인해 3년 전 수술 받은 팔꿈치 근력을 이제 완벽히 회복했다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다.
24일 경기 전 "갑자기 습해지는 느낌이다"라며 25일 일기예보를 물어본 프록터는 "비가 온다고 들었다"라고 답하자 "그럼 오늘(24일) 꼭 나가고 싶다. 페이스가 좋아지는 만큼 만약 오늘 박빙 리드 순간이 펼쳐진다면 최대한 힘을 다해 팀 승리를 돕고 싶다"라며 강한 의욕을 비췄다. 그리고 프록터는 팀의 기대에 걸맞게 1이닝을 잘 막아내며 세이브를 챙겼다. 24일 SK전은 시즌 개막 이래 프록터가 가장 안정적으로 경기를 매조진 순간이다.
150km대 광속구를 거침없이 던질 수 있는 계투 요원들이 포진한 투수진. 코칭스태프 입장에서는 다듬어지지 않은 빠른 공보다 안정적인 제구력이 최고지만 상대 타자 입장에서 손쉽게 빠른 직구를 던질 수 있는 투수들은 분명 두려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두산이 24일 SK전에서 발견한 '150km 트리오'는 다음, 그리고 그 다음 경기서도 광속구 위력을 발산할 것인가.
farinelli@osen.co.kr
이혜천-노경은-프록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