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지.아이.조'로 성공적인 미국 진출을 하고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서 핸드프린팅까지 하게 된 배우 이병헌은 하지만 한층 더 자신을 낮췄다.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아닌, 앞으로 선택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대사를 하얗게 잊어버리는가 하면, 할리우드 시스템에 두려움도 느끼며 신인의 자세로 돌아갔다는 그는 '미국 진출'에 대한 가감없는 소회를 털어놓았다.
이병헌은 25일 오전 서울 CGV압구정에서 열린 영화 '지.아이.조2' 기자간담회에 참석, 할리우드에 진출한 이후 3년만에 2편으로 돌아온 소감과 할리우드에서 작업하며 느낀 점 등을 들려줬다. 주연배우들이 아닌 혼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며 온전히 큰 행사를 이끈 점, 이른 아침부터 주변에 진을 친 수많은 팬들의 모습이 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하지만 이병헌의 한 마디 한 마디에서는 톱스타의 향취를 느낄 수 없었다. 1편에 이어 스톰 쉐도우 역으로 출연, 전편보다 더욱 화려한 액션신과 늘어난 분량으로 등장하지만, 그는 날선 현실감각으로 할리우드의 경험에 대해 들려줬다.

그가 극중 맡은 스톰 쉐도우란 캐릭터는 서양인의 시선에서, 그들이 좋아할만한 전형적인 동양 캐릭터라는 반응도 있는 것이 사실. 이에 대해 이병헌은 동양인 배우로서 '지. 아이. 조' 같은 영화 속 캐릭터는 본인이 거쳐야 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한국과 아시아에서는 톱스타이지만, 서양에서는 영화 홍보에 더 도움이 되는 아시아 배우라는 것.
그는 "'지.아이.조'라는 오래된 유명한 이야기가 있고 그 안에 스톰 쉐도우라는 각인된 캐릭터가 있으면 그 안에 충실하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지.아이.조'를 통해 할리우드에 처음으로 진출했기 때문에 100% 내 취향일 수는 없다. 그것보다는 지금은 선택받는 입장이다. 나중에 내가 선택하기 위해서는 한 번은 겪어야할 작품이고 과정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할리우드 영화 제작 시스템에 대해서는 "효율적이지만 무섭다"라고 솔직히 평했다. 그는 "1편에서 보다는 많이 편해지고 유연해졌지만 아직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라며 "우리나라에서는 배우의 컨디션에 따라서 촬영이 지연될 수도 있고, 누가 심각하게 아프면 촬영 일을 바꾸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보면 인간미가 있는 촬영 진행방식"이라면서 "하지만 할리우드에서는 하루에 어마어마한 촬영비가 드는 시스템이라서 누가 어디 아프거나 어디가 부러져도 촬영장에 오긴 와야 한다"고 할리우드의 환경을 설명했다.
그는 "아침 몇 시부터 시작해서 몇 시에 끝나는 변하지 않는 스케줄은 배우들이나 스태프에게 다른 일을 볼 수 있는 합리적인 시스템"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무서운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계속 적응해야할 부분이다. 하루하루가 긴장된 생활이었다"고 덧붙였다.
또 1편과 비교해서 늘어난 비중과 더불어 영화 촬영 현장에서의 대우도 한층 더 높아진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어깨가 으슥해지고 기분이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도 "공항에 나를 마중나오고 나를 반겨주는 팬들을 보며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내가 영화를 홍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기분이 좋다가도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이 사람들은 얼마나 하루 아침에 내게 다른 모습을 보여줄까란 생각 이 든다. 그런 생각에 '참 무서운 곳 이구나'라는 생각도 더불어 든다"고 날카롭게 현실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성공적인 할리우드 진출에 '유창한 영어'를 큰 이유로 꼽는 이들이 많지만, 이 역시도 쉬운 일이 아님을 털어놨다.
그는 "자다가도 툭 치면 대사가 줄줄 나올 정도로 소화해내야 하는데, 촬영을 하다가 한 스태프가 와서 '이 발음은 그게 아니다'라고 지적해주면 그 것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하얗게 된다. 순간 내가 외웠던 대사들이 하얗게 지워져 내가 무슨 연기를 하는지도 모르게 된다. 그럴 때면 신인으로 돌아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라고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연기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도 토로했다.
예고편의 크레딧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것에 대해서는 "이해 안되는 일"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최근 예고편 크레딧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된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다소 쑥스러워하며 "이해 안 되는 일이다. 분량에 비해 잘 포장이 된 것 같다. 저에게는 부담이기도 하다"라고 솔직히 답했다.
최근 브루스 윌리스가 자신의 연기에 대해 극찬한 것에 대해서는 "약각 영화 홍보성 멘트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솔직한 느낌을 고백하며 "미국 배우들은 칭찬에 후하다. 인사말을 건네면서 홍보성으로 말해준 것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훌륭한 헐리우드 배우가 직접 내이름을 거론해줬다는 사실은 정말 감사한 일이고 영광이다"라고 전했다.
다른 나라에서 다른 언어로, 미국 팬들을 열광시키는 캐릭터를 연기한 그는 하지만 "한국어, 한국 문화가 가장 나에게는 가장 편하기 때문에 한국영화였으면 더 잘했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라고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음을 드러냈다. 할리우드에 톱스타 이병헌은 없었다. 긴장하며 열심히 적응해가는 아시아 배우 이병헌이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병헌은 "스톰 쉐도우가 전형적인 동양 배우들이 많이 보여줬던 역할이라 하더라도 내가 훨씬 더 풍요롭고 멋지게 해낸다면 결국 후에 선택할 수 있는 작품 또한 주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며 배우로서 당찬 포부를 밝혔다.
한편 '지.아이.조2'는 세계 최고의 전투 부대인 '지.아이.조'가 자르탄의 음모에 의해 위기에 처하게 되고, 이에 살아남은 요원들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르탄을 상대로 거대한 전쟁을 펼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6월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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