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은 투수 리드. 제 아무리 방망이 실력이 뛰어나도 투수와 제대로 호흡하지 못한다면 포수로서 자격이 없다. 투수가 무너지는 경우에 포수의 가슴은 더 타들어간다.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드라마 속 명대사가 딱이다.
삼성 라이온즈 포수 이정식(31) 역시 마찬가지. 24일 대구 롯데전서 안방을 지켰던 이정식은 '끝판대장' 오승환의 데뷔 후 최다 실점 기록에 대한 아쉬움을 떨치지 못했다. 당시 2-0으로 앞선 9회 마운드에 오른 오승환은 ⅔이닝 4피안타(1피홈런) 2볼넷 1탈삼진 6실점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340일 만의 피홈런이자 1013일만의 패전, 그리고 데뷔 후 최다 실점이었다. 다음날 대구구장에서 만난 이정식은 평소와 달리 초췌한 얼굴이었다. "너무 속상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정식은 아쉬움이 가득한 듯 한숨을 내뱉었다.
26일 이정식에게 설욕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정식은 6회 조성환(롯데 내야수)의 파울 타구에 오른손 엄지 타박상을 입은 진갑용 대신 마스크를 썼다. 그리고 6-3으로 앞선 9회 오승환과 호흡을 맞췄다. 비장한 각오로 마운드에 오른 오승환은 1이닝 무실점(1피안타 1탈삼진)으로 올 시즌 4번째 세이브를 따냈다. 6-3 승리를 지킨 오승환은 이정식과 악수를 나누며 이틀 전의 악몽에서 벗어났다.

이정식은 경기 후 "이제서야 짐을 덜어낸 것 같다. 지난 경기가 정말 아쉬웠는데 이제서야 떨쳐냈다"며 "그날의 좋지 않은 흐름이 이어질까봐 걱정 많이 했었는데 이제 새롭게 시작할 것 같다"고 선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정식은 "오늘은 마음 편히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한 마디 던진 뒤 라커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승환 또한 수훈 선수 인터뷰를 통해 이정식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그저께 경기가 기억나지 않는다면 거짓말 아니겠냐"는 오승환은 "오늘 똑같은 상황에서 포수가 (이)정식이형이었는데 정식이형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기에 더 잘 막고 싶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세리자와 유지 삼성 배터리 코치는 올 시즌을 앞두고 이정식과 내기를 했다고 한다. 이정식이 선발 마스크를 써서 10승을 달성할 경우 고가의 포수 미트를 선사하기로 했다. 하지만 세리자와 코치는 언제나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는 이정식을 위해 "더 이상 못 기다리겠다. 지금 줄게"라고 예정보다 일찍 선물을 건넸다. 어깨 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이정식. 그야말로 행복한 밤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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