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시 불어오는 봄바람에 괜히 마음만 싱숭생숭한 요즘. 뭇 여성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나쁜 남자들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SBS 월화드라마 '패션왕'의 이제훈, KBS 2TV 월화드라마 '사랑비'의 장근석이 바로 그들이다.
일주일의 시작 월-화요일 오후 10시, 여성 시청자들은 극중 신세경과 윤아에게 감정이입 돼 마음이 녹아내리기 마련이다. 설렘으로 밤잠을 설치게 하는 나쁜 두 남자. 어떤 흡입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월-화요일의 '나쁜 남자' 이제훈과 장근석은 극중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패션왕' 정재혁과 '사랑비' 서준 역을 각각 분한다.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붙잡으며 쿨한 나날을 보내던 두 남자. 하지만 어느 순간 이상하게 한 여자만을 신경 쓰기 시작한다.

정재혁과 서준은 모든 것을 고루 갖춘 '완벽남'으로 등장한다. 한가지 가지지 못한 것이 있다면 '사랑'이다. 물론 사랑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고 오히려 귀찮게 여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정재혁과 서준은 자신들의 눈앞을 왔다 갔다 하던 한 여자에 빠지기 시작한다.
정재혁은 극중 실력은 뛰어나지만 배경이나 조건 등에 얽매여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가영(신세경 분)에게 조력자 역할을 한다. 시작은 '옛다. 불쌍하니까'식의 뒤틀린 마음이었고, '다 가진 자의 여유'로 그저 이가영의 안된 처지에 선심 쓰듯 베푼 호의였다. 정재혁은 자꾸 부딪히게 되는 이가영을 염치없다고 생각하며 대놓고 면박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정재혁은 이가영이 막상 시야에 보이지 않자 불안해하며 먼저 도움을 주려 주변을 맴돈다.
서준은 정하나(윤아 분)와 일본에서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가진다. 서준은 순진하다 못해 멍청할 정도로 착한 정하나에게 무관심하기 이를 데 없다. 정하나에 대한 조금의 배려심도 가지지 않고 가슴에 생채기 내는 말까지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서준은 자신의 칼날 같은 말에 상처받고 눈물을 터뜨리는 정하나의 모습에 자책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신이 제일 소중하고 최고였던 서준이 자책한다는 사실 자체가 큰 변화의 조짐인것이다.
정재혁과 서준은 많은 시행착오와 혼란을 겪은 끝에야 겨우 '사랑'이라는 자신들의 마음을 깨닫는다. 인정하기 싫어하면서도 속수무책으로 운명에 끌려가는 나쁜 남자들. 그들의 높은 콧대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정재혁과 서준이 자신들의 감정을 깨닫고, 하찮다 생각했던 '그녀들'이 사랑으로 찾아왔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는 모습은 재미를 선사한다.
정재혁과 서준은 마음을 내준 '그녀들'과 함께 있을 때 여전히 퉁명스럽기는 하지만 얼굴에 미소가 자주 보이기 시작한다. 가끔은 냉대를 받던 상대방이 흠칫 놀랄 정도의 배려심을 깜짝 발휘하며 마음을 표현한다.
이처럼 시시각각 펼쳐지는 차가운 말투와 따뜻한 눈빛의 적절한 조합은 어느 순간인지도 모르게 시청자들까지 그들에게 반하게 만든다.
'패션왕'과 '사랑비'는 비록 경쟁작에 비해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지만, 각자 그들만의 특색과 분위기로 시청자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냉정하게 대하다가도 뒤돌아서는 더없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사랑하는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는 두 남자는 여심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고전이 돼버린 '나쁜 남자'의 열풍이 지겨울 법도 하지만, 이제훈과 장근석이 표현하는 '나쁜 남자'는 앞선 '나쁜 남자들'과는 달리 엉성하고 빈틈이 있어 또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이제 시청자들에게 '나빠서 멋진 남자'가 된 이제훈과 장근석. 앞으로 더 나빠질 그들의 활약에 마음 놓고 풍덩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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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K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