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 구단 중 유일하게 연패가 없는 팀. 지난 시즌 추진력을 잃고 흔들렸던 그들이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740일 만에 페넌트레이스 1위 자리에 오른 두산 베어스의 현재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산은 지난 26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벌어진 2012 팔도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SK전서 4회 손시헌의 선제 결승포와 선발 더스틴 니퍼트의 7이닝 무실점 호투에 힘입어 막판 추격을 뿌리치고 4-2로 승리했다. 이날 승리로 두산은 시즌 전적 8승 1무 4패(26일 현재)를 기록하며 최근 2연승 및 지난해 9월 3일부터 이어진 SK전 4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같은 시각 삼성에 3-6으로 패한 롯데와 공동 선두로 오르는 기염까지 토한 두산이다. 두산의 페넌트레이스 1위는 지난 2010년 4월 17일 잠실 롯데전 이후 740일 만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 두산은 올 시즌 현재 8개 구단 중 유일하게 연패를 경험하지 않은 팀이다. 17~19일 잠실 삼성 3연전 싹쓸이로 최다 3연승 경험은 있으나 연패는 없었다. 연패가 없다는 점은 전 경기서 나타난 단점을 다음 경기서 선수들이 빠르게 보완해냈다는 뜻과 같다. 그 배경에는 선수단 내에 원활한 소통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점이 있다.

▲ 자율과 책임, 그리고 소통의 기본권
지난해 10월 김진욱 감독이 취임한 후 두산은 시즌 개막에 앞서 선수와 감독, 감독과 코치, 코치와 선수들 간의 원활한 소통을 권장했다. 김 감독은 "감독실 문은 언제나 선수들에게 열려있을 것이다"라며 선수들에게 건의 사항 청구를 어려워하지 말 것을 바랐고 개막 엔트리 26인을 짜는 데 있어서도 1군 코칭스태프 전원에게 "부문에 관계없이 솔직하게 바라는 엔트리를 이야기해달라"라고 부탁했다. 타 구단에서 투수 코치는 투수 부문, 타격 코치는 타격 부문에 권한을 한정시키는 것과 달리 코칭스태프들의 의사소통도 중시한 두산이다.
시즌 개막 후에는 이토 쓰토무 수석코치의 주도 하에 선수단 미팅 시간이 이뤄지기도 한다. 이미 미국 애리조나 1차 전지훈련서부터 훈련 종료 후 코치와 선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작전 등과 관련해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던 두산은 선수단 미팅을 통해 높이 사야 할 점, 반성해야 할 부분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그와 함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수단도 점차 늘어났다.

지난해까지 보기 힘들었던 부분이다. 젊은 선수들의 두각을 통해 최약체 평가를 무색하게 하며 포스트시즌 컨텐더를 넘어 우승 후보로까지 격상되었던 두산은 'SK 포비아' 등으로 인해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며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조급한 면을 보였고 민감한 부분을 언급하기 꺼리기도 했다. 한 야구인은 지난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두산에 대해 "내우외환도 있었으나 주전 선수들이 우승 목표를 잡다가 결국 그 목표에 얽매여 큰 부담을 느끼고 있더라"라며 전체적인 팀 분위기 침체를 꼬집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김 감독 취임과 함께 선수들에게 자율권이 부여되었고 프로 선수로서 책임감도 요구되었다. 26일 경기 결승포 주인공인 주전 유격수 손시헌은 자신의 홈런 상황을 강조하기보다 "찬스 때 추가점이 더 났어야 한다. 8회까지 불안했는데 계투진을 비롯한 투수들이 잘해줘 잘 되었던 것 같다"라며 팀을 먼저 내세웠다. 자율권이 보장되었으나 선수들 개개인이 팀에 대한 미안함과 단결력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
▲ 상명하복 아닌 예의 바탕 수평적 분위기
코칭스태프 구축 및 소통 면에서도 긍정적인 면이 많다. 감독 취임과 함께 "내 인맥 풀이 넓지 않아 코칭스태프를 잘 꾸릴 수 있을 지 모르겠다"라며 헛웃음을 짓던 김 감독은 기존 코칭스태프 외에도 2군 코치 시절 봐왔던 코치를 영입하고 다른 곳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코칭스태프를 영입하고 싶다는 뜻을 구단에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그 결과 이토 수석코치와 고마키 유이치 불펜코치는 물론 지난 시즌 후 넥센 2군 감독으로 내정되었던 정명원 투수코치, 이명수 타격코치가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두산에 둥지를 틀었다. 또한 7년 만에 두산으로 돌아온 고정식 배터리코치나 2년 만에 복귀한 권명철 투수코치 등도 그 과정을 통해 김 감독과 함께하고 있다. 2006시즌까지 두산 2군 감독으로서 화수분 토대를 다졌던 송재박 감독이 다시 퓨처스팀 지휘봉을 잡은 가운데 김경원 전 경찰청 투수코치와 김진수 전 상무 배터리코치도 가세했다.
'김진욱 사단'이 이전부터 구축되어 명맥을 이어 온 것이 아닌 만큼 현재 두산 코칭스태프의 의사 체계는 타 팀에 비해 수평적이다. 김 감독도 공적인 자리에서 다른 코치들을 존중하고 존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토 수석과 함께 두산 유니폼을 입은 고마키 코치는 국내 코치들 못지 않은 활발한 적응력으로 팀의 분위기 메이커가 되고 있다. '상명하복'의 분위기가 아닌 '수평적 토론'의 분위기가 나오면서 팀 분위기도 점차 좋아지고 스스로가 느낀 경기력 장단점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다.

▲ 움트는 경쟁 체제, 위험요소는?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인식 변화다. 부상을 참고 뛰는 선수들이 많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부상이 악화되기 전에 먼저 트레이너진에 통보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와 함께 백업 선수들 사이에는 '우리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다'라는 긍정 효과가 나오고 있다. 부상자 관리가 보다 철저해지면서 타율적이 아닌 자율적인 '무한 경쟁 체제'도 점차 싹을 틔우는 중이다.
그렇다고 연패 없는 두산의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승리한 경기라도 시점에 따라 경기력 기복이 심하다는 점이다. 지난 8일 넥센과의 개막 2차전서 경기 초중반 무기력했던 것과 달리 후반 대단한 집중력으로 13-11 역전승에 성공했다. 26일 경기서도 4-0으로 앞서다 추가점 찬스를 잇달아 놓친 뒤 계투요원 서동환의 제구 난조로 무사 만루 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다. 선수들에 대한 신임도가 큰 만큼 승부처에서 선수의 경기력에 따라 전략 성패가 좌우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선수들의 집중력과 컨디션에 따라 한 경기 내에서도 여러 가지 모습이 나오고 있는 2012시즌 초 두산이다. 시즌을 보내면서 팀의 긍정적인 색깔을 굳히지 못한다면 자칫 확실한 강호 이미지를 심지 못하고 다크호스나 도깨비팀 정도로 치부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팀 분위기가 잃을 것 없이 과감히 뛰던 시절처럼 회복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 그러나 집중과 적당한 긴장, 상호 간의 존중 속 형성된 이 분위기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으면 상위권 굳히기는 장담할 수 없다. 740일 만에 1위 자리에 오른 두산이 고삐를 쉽게 풀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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