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무대는 달랐어도 리그를 평정했던 두 명의 타자가 있다. 바로 이대호(30,오릭스 버펄로스)와 알버트 푸홀스(32, LA 에인절스)가 그 주인공이다.
나란히 2001년 1군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이대호와 푸홀스(2000년 마이너리그 활약)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했다.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푸홀스는 데뷔 시즌부터 괴물과 같은 활약을 보인 반면 이대호는 2006년부터 타자로서 완성된 기량을 뽐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푸홀스의 지난 시즌까지 통산 성적은 타율 3할2푼7리 445홈런 1329타점으로 정교함과 파괴력을 동시에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는 무려 10년 연속으로 3할-30홈런-100타점 기록을 이어가며 '파괴적인 꾸준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덕분에 푸홀스는 2001년 신인왕에 이어 3회(2005년, 2008년, 2009년)에 걸쳐 내셔널리그 MVP에 선정됐다.

이대호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우타자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통산 성적은 타율 3할9리 225홈런 809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타자로서 본격적으로 기량을 만개시킨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평균 성적을 살펴보면 타율 3할3푼1리 28.7홈런 102.5타점으로 푸홀스와 마찬가지로 정교함에 파워까지 더했다. 2006년 사상 두 번째로 타자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더니 2010년엔 전무후무한 타자 7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011년 시즌을 끝으로 동시에 FA 자격을 얻은 두 선수의 거취는 한국과 미국 팬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대호는 롯데 구단에서 제시한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액수인 4년간 100억원을 뿌리치고 2년 7억엔(한화 약 104억원)에 오릭스로 떠났다. 또한 푸홀스 역시 LA 에인절스와 10년간 2억4천만 달러(한화 약 2720억 원)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내셔널리그에서 아메리칸리그로 리그를 옮겼다.
프로 데뷔 후 비슷한 행보를 걸어왔던 두 명의 거포. 누구도 그들을 '무결점의 타자'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지만 올 시즌 보여주고 있는 기대 이하의 모습까지도 닮아가고 있다. 이대호는 21경기 연속 4번타자로 선발 출전하면서 타율 2할3푼1리(78타수 18안타) 1홈런 8타점에 그치고 있다. 출루율은 3할1푼8리, 장타율은 3할8리, OPS는 .626으로 한 팀의 4번 타자로선 아쉬운 성적이다. 오카다 감독의 무한 신뢰속에 4번 타순을 지키고 있지만 언제 자리를 내놔야 할 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푸홀스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 7일(한국시간) 캔자스시티와의 첫 경기에서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첫 타석에 들어섰으나 병살타로 신고식을 치른 푸홀스는 19경기에 출전, 타율 2할2푼4리(76타수 17안타) 4타점에 그치고 있다. 출루율은 2할8푼, 장타율은 3할1푼6리, OPS는 .595을 기록 중이다. 모두 이대호와 놀랄 정도로 비슷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직 홈런이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 언론은 제 값을 못하는 푸홀스에 대해 "이제 더 이상 최고의 타자가 아니다"라는 냉혹한 평가를 서서히 내리고 있다.
오릭스와 에인절스는 각각 야심찬 계획과 함께 거액을 들여 두 타자를 영입했지만 아직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팀 성적도 중심 타자의 부진과 함께 하락일로를 걷고있다. 오릭스는 27일 현재 일본 퍼시픽리그에서 8승 12패로 6팀 가운데 5위에 처져있다. 팀 타율 2할2푼8리로 타격 부진이 순위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이다. 또한 에인절스는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서 6승 13패로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물론 아직 시즌 초반이기 때문에 속단은 이르다. 페이스를 끌어올리며 지금보다는 분명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는 예상이 아직까진 지배적이다. 부진한 개인성적에 저조한 팀순위까지, 어깨가 무겁기만 한 두 강타자 가운데 먼저 침묵을 깰 자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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