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인 젊은이들의 사랑으로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불태우고 있는 SBS 월화드라마 '패션왕'. 이 드라마는 젊은이들이 인생의 전부라고도 외치는 개인적인 '사랑과 질투'에서부터 나아가 사회적으로는 '성공과 실패'까지 다루며 울고 웃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극중 네 남녀 주인공 강영걸(유아인 분), 이가영(신세경 분), 정재혁(이제훈 분), 최안나(유리 분)의 얽히고설킨 애정전선과 감정의 실타래는 현실 속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특히 이가영은 '완벽남' 정재혁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이해심 부족에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강영걸만을 바라본다. 또한 정재혁은 출중한 미모와 실력을 갖춘 '멋진 여자' 최안나를 얻었음에도 이가영을 놓지 못하고 마음속에 들여놓는다.

두 인물의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에 시청자들은 의아한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가영과 정재혁의 사랑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1. 키다리 아저씨가 어느새 내 마음에.. 이가영
이가영은 어렸을 적 부모를 잃고 조마담(장미희 분) 밑에서 갖은 수모를 겪으며 성장하는 '신데렐라' 캐릭터다. 하지만 뛰어난 디자인 실력을 갖춘 이가영은 늘 밝게 지내려 애쓰는 '캔디'이기도 하다.
이가영의 목표는 유명 패션 스쿨 입학. 기다리던 패션 스쿨의 입학 통지서, 그것도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되지만 조마담의 계략에 의해 입학이 좌절된다. 이때 바로 강영걸이 나타난 것이다.
강영걸은 이가영의 사연을 듣고 자신도 어려운 처지에 선뜻 이가영에게 미국으로 갈 자금을 마련해준다. 이가영의 마음은 이때부터 흔들렸을 것이다. 이가영은 동대문에서 '짝퉁' 사업을 하며 근근하게 사는 강영걸에게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을 무심한 듯 대하지만 묵묵히 지원해주는 그에게 깊은 고마움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가영은 생일날 미역국 한번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외로운 인물이다. 이러한 이가영에게 강영걸이 주는 관심과 애정은 화려한 생일 밥상만큼 커다란 존재감을 심어줬을 것이다. 이가영을 지켜보는 '키다리 아저씨' 강영걸을, 어느 순간 여인으로서 남자로 보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사랑 방식인 것이다.
오히려 이가영은 자신의 출세를 보장시켜줄 수 있는 정재혁을 밀어낸다. 이가영에게 정재혁은 이가영이 가진 외로움보다 더 큰 외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인물인 것. 그렇기 때문에 이가영은 부와 명예보다는 자신에게 첫 따뜻함을 선사해 마음을 채워준 강영걸 '바라기'가 된 것이다.
2. 내게 가질 수 없는 것이 있을 순 없다..정재혁
정재혁은 외모, 명예, 부, 모든 것을 쥐고 있는 남자다. 비록 드센 어머니 아래에서 억압받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양보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인물이다.
어느 날, 정재혁은 이가영이라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여자를 만나게 되며 인생에 색다른 시야가 트인다. 초반에는 동정심과 자기 과시용의 자만함이 섞인 마음으로 이가영을 돕기 시작한다. 그런데 자꾸 이가영을 바라볼수록 호기심이 생기고 욕심이 난다. 정재혁은 자신과는 대조되는 삶을 살고있는 그녀의 옆에 있어야 비로소 존재감과 안정을 찾는다. 이 트라우마 같은 정재혁의 사랑방식은 지금은 멀리하려 하는 전 연인이 최안나라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최안나도 재벌가 딸이 아닌 평범한 디자이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가영은 단숨에 정재혁에게 넘어왔던 최안나와는 다르게 객관적으로 정재혁보다 못난 강영걸만을 바라보고, 정재혁은 이렇게 자존심을 건드는 이가영의 모습에 분개한다. 하지만 간혹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정재혁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연민의 시선을 보내고 보호본능을 느끼기도 한다.
이기주의가 만연한 요즘. 정재혁은 자신이 가진 것을 되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가지지 못한 것만을 좇는 '채우기 중독증'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결국 사랑의 부족과 사회의 소외감에서 온 것이다. 진심으로 말 한마디 터놓을 곳 없는 정재혁이 작은 것에도 큰 허전함을 느끼며 목숨을 걸고 안달복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브라운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지만 네 남녀주인공은 젊은이들의 모습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리고, 나아가 사회 속 우리들의 세태를 꼬집고도 있다.
'패션왕'은 확립되지 않은 인물들의 애정전선과 혼란스러운 관계도로 일부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환상 같은 배경, 로맨틱한 사랑으로 휴식을 주는 것 뿐만 아니라, 일직선보다는 미로와 같은 우리네 복잡한 삶을 더 극적으로 드러낼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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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왕'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