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팀마다 정말 열심히 하는 것을 알기에 코치진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하는 선수들이 있다.
넥센 히어로즈의 내야수 지석훈(27)은 2003년 현대에 입단 후 묵묵하게 현대, 그리고 넥센 내야를 지켜왔다. 주로 백업 멤버로 출장하지만 모든 루를 다 책임질 수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서 팀내에서 인정받고 있다.
김시진(54) 넥센 감독은 지난 28일 청주 한화전을 앞두고 지석훈 이야기를 꺼냈다. 2005년 박진만이 삼성으로 떠난 뒤 김 감독은 지석훈을 유격수로 키울 생각을 했다. 타율이 1할대에 그치면서 팬들이 못치는 선수를 계속 기용한다며 비난했지만 김 감독은 선수 한 명을 키우려면 되든 안되든 계속 기회를 줘야 한다는 생각에 지석훈을 내보냈다.

두세달이 지난 뒤 지석훈이 김 감독을 찾아왔다고 했다.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한 지석훈은 자청해서 2군에 갔다. 그리고 김 감독은 그 해 지석훈을 다시 불러올리지 않았다고 했다. 2005년 지석훈은 61경기 출장, 106타수 19안타 8타점 타율 1할7푼9리에 머물렀다.
그후 지난해까지 1루 박병호, 2루 김민성, 유격수 강정호, 3루수 김민우 체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면서 지석훈의 설 자리가 없어졌다. 지난해말 테스트로 들어온 서건창은 캠프 기간 뛰어난 활약으로 김민성이 비운 2루를 놓고 지석훈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올 스프링캠프에서 "지석훈이 많이 발전했다. 올해 쓰임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던 김 감독이었지만 올 시즌 유달리 더 두터워진 타선 속에 지석훈이 낄 틈은 좁아보였다.
그러나 지석훈은 스스로 살 길을 찾아가는 선수였다. 지석훈은 지난달 24일 문학 SK와의 시범경기에서 역전 스리런을 날린 데 이어 지난 28일 팀이 1-5으로 뒤진 7회 1사 1,2루에 대타로 나서 3점 홈런을 터뜨리며 팀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의 능력을 믿고 대타로 기용한 김시진 감독의 '신의 한 수'였다. 넥센은 결국 7-5 역전승을 거두고 쾌조의 5연승을 달렸다. 공교롭게도 김 감독이 과거 믿음을 주지 못했던 그의 이야기를 던진 바로 그날이었다.
지석훈은 경기 후 "홈런은 매우 기분이 좋지만 노리고 친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살아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쳤는데 행운이 따랐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는 "팀 선수들이 모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집중하는 것이 최근 승인"이라고 밝혔다.
지난 SK와의 시범경기에서 홈런을 날린 뒤 지난해까지 넥센 코치였던 이광근 SK 수석코치는 "원래 지석훈이 한 방이 있는 선수다. 지석훈이 나오길래 홈런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뒀는데 그걸 맞췄다"며 예전 제자에 대한 뿌듯함을 드러냈다.
이처럼 지석훈을 바라보는 예전 코치진들의 기대는 컸지만 그는 어렸었다. 그리고 이제 부담감을 벗고 자기의 역할을 찾은 지석훈은 28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200% 해냈다. 그를 비롯해 주전과 비주전을 가리지 않은 선수들의 고른 맹활약 속에 넥센이 소리없이 강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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