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표현한다. 올 시즌 LG의 4번 타자로 낙점된 정성훈(32, 내야수)을 보면 더욱 그렇다.
광주일고를 졸업한 뒤 1999년에 프로 무대에 뛰어든 정성훈은 단 한 번도 20홈런 고지를 밟은 적이 없었다. 두 자릿수 홈런을 달성한 것도 6차례에 불과하다. 즉 거포와는 거리가 멀었다.
올해부터 LG의 지휘봉을 잡은 김기태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4번 타자는 팀의 중심이다. 4번 타자가 타선의 밸런스를 맞춰줄 의무가 있다. 올 시즌 LG 트윈스의 새로운 4번 타자를 만드려고 한다"면서 정성훈에게 4번 중책을 맡겼다.

김 감독은 정성훈이 파괴력 넘치는 4번 타자와는 다소 거리가 멀지만 팀이 필요할 때 한 방을 날려주는 해결사 본능을 선보이길 기대했다. 1994년 LG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한대화 한화 감독같은 해결사 면모 말이다.
주변 사람들도 반신반의했던 정성훈의 4번 기용은 대성공이다. 김 감독의 한결같은 믿음과 김무관 타격 코치의 열성적인 지도의 합작품이었다.
28일까지 타율 3할2푼7리(55타수 18안타) 7홈런 16타점 12득점 맹타를 과시 중이다. 생애 첫 홈런 및 장타율 부문 선두를 달리고 있다. 김 코치는 29일 사직 롯데전을 앞두고 "정성훈의 스윙 궤적이 좋아졌다. 전훈 캠프에서 홈런을 가장 많이 때린 선수"라며 "좋아하는 코스를 노려칠 수 있게 됐다"고 호평했다.
정성훈은 4번 중책을 부여받은 뒤 부담이 적지 않았다. 마치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럴때마다 김 코치는 "네가 이대호(오릭스)도 아니고 부담갖지 마라"고 어깨를 다독였다.
지난해까지 33.5인치(870g)의 방망이를 사용했던 정성훈은 올해부터 34인치(900~920g)로 늘렸다고 한다. 김 코치는 "힘이 떨어지거나 슬럼프에 빠질 수 있기에 방망이 무게를 늘렸다"고 전했다. 신개념 4번 타자로 자리매김한 정성훈은 올 시즌 타 구단 투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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