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정선민, "선수로서 120점 주고 싶다"
OSEN 우충원 기자
발행 2012.04.30 12: 51

"선수로서 평가한다면 120점을 주고 싶다".
지난 18일 은퇴를 선언한 여자농구 스타 정선민(38)이 30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WKBL(한국여자농구연맹)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정성민은 마산 산호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를 시작해 29년 동안 코트를 누볐다. 1993년 실업팀 선경증권에 입단해 신세계, 신한은행, KB스타즈를 거치며 숱한 업적을 남겼다.

정선민은 총 9회(신세계 4회, 신한은행 5회)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7회, 득점왕 7회를 차지했다. 통산 경기당 평균 19.6득점, 7.6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정선민은 국가대표로도 큰 활약을 펼쳤다. 1994년부터 16년간 국가대표로 뛰면서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0년 시드니 올림픽 4강, 1999년 시즈오카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 2002년 세계선수권대회 4강, 2007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 등 한국 여자농구 역사에서 많은 기록을 남겼다.
2003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진출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시애틀 스톰에 입단해 주전을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실력만큼은 인정받았다.
정선민은 "마흔이 다 된 나이에 은퇴를 하는 것이지만 어찌 보면 또 다른 입문을 의미한다"면서 "선수생활하는 동안 행복한 시간이었고 29년 동안 코트에 있는 동안 다른 선수들보다 열정을 다해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이고 선수생활을 잘 했기 때문에 이런 영광스러운 은퇴 기자회견이라는 자리도 마련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정선민의 기자회견 일문일답.
▲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 시작은 미미했다. 언론에 노출이 되고 이름 석 자를 알리기 시작한 것이 고등학교 1학년 때였고 지금까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정말 굉장한 어떤 기록들과 영광스러운 게 많았기 때문에 끝은 창대했다고 생각한다.
▲ 기억 남는 순간.
- 좋앗던 것은 우승하는 순간이었다. 무려 9번이나 기록을 세웠으니까 매 순간이 값진 영광이었다. 아쉬운 점은 2011~2012시즌에 국민은행에서 다시 마지막으로 우승을 선사하는 게 꿈이었는데 성사되지 못한 것이 제일 안타깝고 아쉽다. 그러나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 포스트 정선민은 누구.
- 정선민이라는 색깔을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서 독특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농구를 사랑하는 팬 분들이 나에게 올어라운드, 바스켓퀸 등의 별명을 달아준 것도 한 역할에 치중하지 않고 다방면에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플레이를 한 것을 좋게 평가한 것 같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 닮은 선수가 없었으면 좋겠다. 영원한 나의 캐릭터가 기억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결혼 때문에 은퇴를 결심했나.
- 아이를 낳고도 선수를 하기도 한다. 결혼 때문에 그만 두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자로서 삶을 포기하고 선수생활을 했다. 나의 생활은 없었다. 많은 딜레마가 생기고 여자로서 살아갈 게 답답하고 진부하고 재미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농구 코트에서는 재미있는데 비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또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거듭 말하지만 결혼을 위해 은퇴하는 것은 아니다. 
 
▲ 개인에게 점수를 매긴다면.
- 120점. 이런 자리가 나란 선수가 정선민이니까 가능한 거 아닐까. 잘 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영원히 농구장을 떠나서도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100점보다 더 많이 줄 수 있을 것이다.
 
▲ 선수생활 동안 이기적이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 어떤 것이 이기적이었는지 묻고 싶다. 너무 잘 해서 이기적이었나. 늘 구설에 올라 있었다. 내가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고 아닌 일들이 했던 것처럼 돼 있고 그렇게 선수생활 했다. 어찌 보면 좋은 말을 많이 들은 반면 나쁜 말도 많이 들은 선수다. 산전수전 다 겪으니까 오보인 기사에도 수용할 수 있는 마음도 생겼다. 그리고 이기적인 것은 좋게 말해서 나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마지막까지 이기적이고 싶다.
▲ 지도자로서 목표가 있나.
- 정말 많다. 10~12년 아마추어 생활 하면서 많은 감독님들의 좋은 점을 잘 흡수했던 것 같다. 29년 선수 하는 동안 가르쳐주셨던 지도자분들이 모두 스승이고 은사다. 이만큼 된 것도 그분들 덕이다. 슬럼프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나름대로 슬럼프를 굉장히 많이 겪은 선수 중 하나다. 농구를 못해야만 슬럼프라고 생각하는데 아닌 이야기들이 많이 나올 때 나만의 싸움을 많이 해야 했고 어찌 보면 나는 우선 내 자신에게 공을 돌리고 싶고 정신적인 부분을 같이 이해해줬던 후배들 몫도 컸다. 새롭게 마인드 바꿀 수 있도록 해 준것은 후배들이었다.
▲ 미국 생활은.
- 짧아서 아쉬움이 많은 시간이었다. 미국에 있었던 6개월이 29년 선수 생활 터닝포인트였다. 드래프트 1라운드 7순위를 통해 절차를 제대로 밟아서 갔다.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게 평가를 받았고 아시아에서 최초로 WNBA에 진출한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행복했고 이게 역시 달랐다. WNBA 진출이 가기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
- 그동안 붐을 일으켰던 점보시리즈, 농구대잔치 때부터 팬이었던 세대들이 한국 농구를 사랑해주는 것 같다. 나는 복을 타고 난 사람이다. 때를 잘 타고 났다. 그 때 태어났기 때문에 사랑 받는 것이다. 행복했고 멋진 팬분들이 계셨기에 멋졌다고 생각한다. 내가 없지만 대를 이을 수 있는 후배들이 열심히 뛸 것이고 노력할 거니 한국 여자농구를 많이 사랑해주고 여자농구 팬들로서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좋겟다.
▲ 향후 계획은.
- 당분간은 내가 뭘 해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갖겠다. 선수로서 모든 생활이 끝났지만 어떤 계획을 가질지에 대해서는 숨 좀 돌리고 포커스를 맞춰서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듯하다. 그냥 좀 쉬고 싶다. 사람들 만나고 여행도 다니면서 앞으로 계획을 하나씩 만들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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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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