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손남원의 연예산책] 이명세 감독이 여전히 자기만의 작품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가 신작 '미스터 K' 감독직 하차를 둘러싸고 후배 윤제균 감독과 벌이는 이전투구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이명세 감독이 연출을 맡았던 '미스터K'는 총 예산 100억원 규모의 한국형 블록버스터다. 이 감독의 실력을 높이 평가한 윤 감독이 준비된 시나리오와 설경구 문소리 다니엘 헤니 등 특급 캐스팅을 엮어서 연출을 부탁했고 CJ E&M의 투자결정으로 '레디 고'를 외쳤다. 여기까지는 굿 스토리고 충무로 미담이다.
스타일리스트 이 감독은 2005년 '형사'와 '2007년 'M'의 지지부진한 흥행 이후 마땅한 투자자를 찾는데 곤란을 겪었다는 게 중론이다. '형사'와 'M'은 이 감독 특유의 영상미와 스타일이 듬뿍 발휘된 '작품'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지만 관객을 위한 '영화'는 아니었다. 투자자나 제작사들이 이 감독 개인전 열어주자고 영화를 만들지 않는 이상, 연출 부탁을 꺼리기 시작한 건 당연지사다.

그런 이 감독에게 대작 '미스터K'의 연출을 맡기고자 했던 윤 감독도 주위의 만류에 시달렸다. 그래도 '이 감독이니까'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관철했고 대신에 '상업성도 고려해달라'는 단서를 달았다고 한다.
하지만 첫 현장 촬영분을 본 제작사는 '아차' 싶어 이 감독과의 협의를 요구했으나 이를 연출권에 대한 간섭과 억압으로 본 이 감독은 역공을 취했다. 윤 감독 입장에서는 '물에 빠진 사람 건져놨더니..' 땅을 치며 억울할 일이겠지만 이미 때 늦은 후회. 영화관계자들에 따르면 윤 감독도 '미스터K'가 무너지면 모든 걸 잃을 상황임에도 이 감독과 그의 스태프들은 가진 자(윤 감독)의 횡포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양 측의 얘기가 엇갈리는 만큼 진실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당사자들만 알 뿐이다. 그럼에도 이번 '미스터K'의 논란에서 지난 2002년 충무로를 뒤엎은 대재앙으로 회자되고 있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다. 그 당시 100억원대 제작비를 쏟아부은 이 영화는 관객과 전혀 소통하지 못하는(아예 소통할 의사가 전혀 없었던) 스토리와 전개로 철저히 외면받았고 이후 한동안 대작 한국영화의 투자 물꼬를 꽁꽁 틀어막는 역할을 했다.
그 때 충무로는 한 가지 교훈을 뼈 저리게 느꼈다. 대작 영화에 작가주의 실험정신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관객을 가르치려 드는 감독과 그를 믿고 돈을 대는 투자자들은 결국 쪽박을 차고 만다는 산경험을 얻은 것이다.
작가주의 도전도 영화계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100억원 짜리 상업영화에서 그걸 실현하겠다는 용기는 제작사의 저항에 부딪힐 게 뻔하지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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