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게 두드러지기 보다는 부드럽게 영화에 힘을 싣는 배우들이 있다. 충무로에서는 이선균과 엄태웅이 그 대표 연기자들이다.
소위 연기파, 개성파로 불리는 굵직 굵직한 남자 배우들이 영화 속에서 한 번에 두각을 나타내기 더 쉽지만, 날라 달리는 캐릭터들 사이에서 연기의 중심을 잘 잡아주는 연기자들은 묵묵하게 빛을 발한다. 엄태웅과 이선균은 이런 점에서 충무로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들이다. 누군가는 '보통 남자'를 떠올릴 수 있지만, 수많은 색이 존재하는 정상 범주의 인물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배우의 몫이다.
이선균이 연기하는 캐릭터에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울림이 있다. 특히 최근 선보이는 두 편의 작품에서는 아내(혹은 연인)를 대하는 전혀 다른 태도를 지닌 인물들로 분해 더욱 눈에 띈다.

3월 개봉한 '화차'에서는 갑자기 사라진 약혼녀를 찾하 헤매는 문호로 분해 관객들의 깊은 동정을 받았다. 사랑하는 여자가 알고보니 추악한 비밀을 지닌 여자임을 알고 분노하고 실망하고, 하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절제 있게 보여줬다.
하지만 오는 17일 개봉하는 민규동 감독의 신작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는 반대로 아내를 피해 도망치고 탈출하려는 소심한 남편으로 분해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내 정인(임수정)이 제일 무섭고, 이혼이 가장 어려운 소심한 남편 두현 캐릭터를 연기하는 그는 적절한 웃음과 적절한 슬픔, 그리고 따뜻한 감동을 준다.
정인을 유혹하는 카사노바로 분한 류승룡, 막무가내로 험하게 독설을 쏟아내는 임수정, 이 신기할 정도로 독특한 두 캐릭터 안에서 영화에 '현실감'을 잡아주는 인물은 이선균이다.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 '파스타', 영화 '쩨쩨한 로맨스' 등을 통해 여심을 공략하며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활발하게 오가는 이선균은 멋짐과 찌질이라는 양극단의 모습을 본인만의 개성으로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엄태웅은 남성미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표현할 줄 아는 배우로 어떤 역할을 맡아도 자연스럽다는 장점이 있다. 사극(선덕여왕)도, 현대물(건축학개론)도, 액션영화(특수본)도, 마니아틱한 영화(차우)도, 장르에 상관없이 모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그 만큼 관객들에게는 엄태웅에게 기대하거나 예상하는 어떤 고정된 편견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 여배우들을 돋보이게 해 줘 '여배우를 띄우는 남자배우'로도 불리기도 했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님은 먼 곳에', '시라노:연애 조작단', '건축학개론' 등을 보면 이 말에 어느정도 공감이 갈 법 하다. 하지만 단순히 상대배우를 잘 받쳐주는 배우를 넘어 '기본 중심을 잘 잡아주는 배우'란 표현이 더 맞다고 할 수 있다.
최근작 '건축학개론'에서는 첫사랑 서연(한가인)의 갑작스런 등장에 당황하고, 흔들리고, 다시 미묘한 감정에 빠지는 건축가 승민을 연기하며 현실 같지 않은 영화에 현실감을 넣어주는 무게 중심을 담당했다. 첫 사랑이 10여년만에 눈 앞에 딱 등장하는 자체가 판타지인 이 영화에서 정통 멜로의 리얼함을 잘 살려 준 일등공신이 엄태웅이다.
앞서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도 연애에 서투른 사람들을 대신해 연애를 이뤄주는 연애조작단이라는 소설 속에만 등장할 법 같은 이야기를 다뤘지만, 엄태웅은 캐릭터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며 관객들의 공감을 얻었다. 물 흐르는 듯 유연한 자연스러움을 통해 굳이 '파격'이란 표현이 붙는 변신이 없어도 매번 섬세하게 다양한 인물을 만들어내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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