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악역들, 배우에게 득일까 실일까?
OSEN 김경민 기자
발행 2012.05.04 17: 52

악역을 맡았다고 시청자 욕만 실컷 먹고 끝났던 안방극장 시대는 과거로 흘러간지 오래다. 요즘은 오히려 악역으로 하루아침에 스타로 뜨는 배우들이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SBS 수목드라마 '옥탑방 왕세자'에서는 배우 정유미와 이태성이 악행의 끝을 보여주며 각각 홍세나 역과 용태무 역을 소화하고 있다.
홍세나(정유미 분)는 극중 부모의 재혼으로 '쿵' 떨어진 이복 동생 박하(한지민 분)를 경멸한다. 사춘기 시절 부모의 재혼과 함께 생긴 이복 동생이 마음에 들리도 없겠지만, 홍세나는 자신의 성공과 사랑에 걸림돌이 되는 박하를 갈수록 증오한다. 홍세나가 가지고 있는 박하에 대한 깊은 거부감은 이해할 수 없는 악행과 이간질을 초래한다.

용태무(이태성 분)는 사촌동생 용태용(박유천 분)에게 할머니의 사랑과 관심을 빼앗기고 손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할머니의 사랑도 모자라 유일한 기대였던 회사 경영권까지 용태용에게 넘어갈 위기에 닥치자 절박한 악행을 저지른다.
하지만 두 인물은 갖은 노력을 기울여 저지른 악행의 실패를 맛보기도 한다. 오히려 악행은 자신들을 파멸로 이끈다. 시청자들은 악인들로 인해 형성되는 극중 대립각 속에서 손에 땀을 쥐면서도 막상 악인들이 무너지는 모습에 연민과 동정을 느끼기도 한다. 
홍세나와 이태성이 자신들의 것을 송두리째 빼앗길 처지에서 지푸라기 잡 듯 벌이는 악행은 공감을 얻기 때문이다. 설득력 있는 악인 캐릭터는 시청자들이 배우들을 '악인 그 자체'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악한 인물을 표현하는 연기력'에 집중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악역은 한 배우의 이미지 변신에 확실한 전환점을 준다. 정유미는 앞서 SBS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너무' 착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까지 받은 노향기 역으로 열연했다. 정유미는 환한 미소와 눈웃음으로 도저히 음모라고는 꾸밀 수 없는 천사 같은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을 '옥탑방 왕세자'에서는 악녀의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을 표현하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태성도 그간 덜렁대거나 다혈질 성격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불같은 성격의 청년'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옥탑방 왕세자'에서는 악행을 주도면밀하게 계획하며 알리바이를 짜는 치밀한 모습을 보이는 등 지능적인 엘리트 악인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이처럼 배우들의 돌변한 모습에 그들의 다채로운 연기력은 돋보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악인들의 활약은 극의 긴장감을 구축하고, 악인들의 방해를 이겨낸 선한 캐릭터들의 해피엔딩은 드라마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반면 쏟아지는 호평에도 불구하고 악역을 소화하는 배우들은 나름 작지 않은 고충을 겪기도 한다. 배우들은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은 극중 맡은 인물에 몰입하며 그 인물에 항상 빠져 생활한다. 그래서 악역을 맡은 배우들은 실제 우울증을 겪기도 하고, 주변인들에게 짜증이 늘기도 하는 등 일상 생활에서 본의 아닌 '악인 증상'을 호소한다.   
또한 악역을 성공적으로 소화했기에 겪는 말 못할 고충도 있다. 배우 김영철은 지난 2일 KBS 1TV 일일드라마 '별도 달도 따줄게' 제작발표회에서 "그동안 역할(악역)이 눈에 띄긴 하지만 내 자신에게는 불만스러운 것이 많았다"며 "좀 더 여러 인물을 소화하지 못하고 자꾸 한쪽으로 치우쳐서 역할을 하다 보니까 자신이 한정돼있는 느낌을 받는다"며 단점을 토로했다. 배우 김희애 또한 한 토크쇼에서 "지난 2007년 작품 '내 남자의 여자'에서 본능에 충실한 악역 화영 역을 연기한 이후 계속 악역 대본만 들어와 4년의 공백기 거쳤다"며 비화를 털어놨다.
오히려 욕을 먹어야 기분이 좋다는 악역 배우들. 배우들은 악역으로 성공적인 연기 변신과 연기력 호평이라는 수확을 얻기도 하지만, 이미지가 국한돼고 배역이 한정되는 등 뜻밖의 위험이 수반되기도 한다. 하지만 배우들은 그 위험을 껴안고도 진실된 노력으로 캐릭터에 녹아들며 많은 시청자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독해질 수록 환호 받는 이유있는 '악(惡)'들. 그들의 전성기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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