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트자세를 미리 취하고 있다가 위로 올리면 안 되지. 앞으로는 내려찍듯이 번트를 대야지".
글로만 보면 질책성이 담긴 조언. 그러나 이 이야기를 하는 감독의 표정은 흐뭇했다. 유망주도 그런 감독의 마음을 알고 있었는지 수줍게 웃으면서 다시 그라운드로 뛰어 나가 훈련에 임했다. 4년차 내야수 허경민(22, 두산 베어스)이 김진욱 감독의 아빠 미소를 절로 자아내게 했다.
광주일고 시절부터 경북고 김상수(삼성), 서울고 안치홍(KIA), 경기고 오지환(LG), 충암고 이학주(탬파베이) 등과 함께 전도유망한 유격수 유망주로 명성을 떨쳤던 허경민은 2009년 두산에 2차 1라운드로 입단한 뒤 2년 간 경찰청에서 복무하는 등 첫 3년 간은 2군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데뷔 첫 1군을 경험한 올 시즌에는 17경기 3할5푼3리 4타점 2도루(4일 현재)를 기록하며 바람직한 성장세를 보여주는 중이다.

특히 오재원, 고영민의 잇단 부상으로 구멍난 2루 포지션을 막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 하다. 원래 허경민의 주포지션은 유격수 자리지만 동선이 반대인 2루에서도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4일 LG전서는 2루타 2개와 2타점은 물론 7회 2사 만루서 이진영의 안타성 타구를 걷어내기까지 하며 팀 승리 일등공신이 되었다.
물론 옥의 티도 있다. 번트 작전이 나왔을 때 허경민은 두 차례 번트 실패로 선행 주자의 진루를 이끌지 못하기도 했다. 지난 2일 대구 삼성전서 그 모습을 보여주는 바람에 김 감독은 허경민에게 따로 "번트 자세를 취하고 있다가 위로 방망이를 올리지 말고 버스터를 할 것처럼 자세를 취했다가 내려 찍듯이 번트를 대라"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워낙 기대 이상으로 잘하고 있는 만큼 질책이 아닌 따뜻한 조언의 어조였다.
"언젠가 우리 팀의 유격수로 뛰어야 할 선수다. 그러나 당장은 유격수 자리를 꿰차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동선이 반대되는 2루수 자리에서 저렇게 잘해주고 있어 대견하다". 2009년 퓨처스 올스타전서 북부팀 2루수로 선발 출장하기도 했던 허경민은 "학창 시절에도 그렇고 지난해까지는 2루에 10번도 안 서봤어요"라며 낯선 자리임을 실토하기도 했다. 그 풋내기 2루수가 팀의 빈 자리를 제대로 메우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만 하다.
아직은 약점도 있는 선수다. 올해 처음으로 1군을 경험하고 있어 제대로 된 컨디션 저하 시기를 겪지 못했다. 체구도 왜소한 편이라 확실한 장타는 기대하기 힘들다. 대신 웬만해서 삼진을 당하지 않고 투수를 괴롭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도루 시도 시 스타트 동작이나 추진력, 슬라이딩 기술 모두 좋은 편이다. 여기에 시범경기서 중견수 부업을 할 때는 정규 훈련이 끝난 후 추가 훈련을 자청해 외야 그라운드를 밟기도 한다. 허경민은 팬들도 잘 모르는 장점이 굉장히 많은 선수다.
"어떻게든 올 시즌 한 해 동안 1군 풀타임으로 활용해보고 싶다. 가진 재능이 굉장히 많은 선수니까". 시즌 초반 허경민은 왜 감독이 자신을 지켜보며 아빠 미소를 지었는지 제대로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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