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금맥을 캐지 못하던 한국 복싱에 24년 만에 동반 금메달을 노리는 두 선수가 나타났다.
한국 복싱의 기대주에서 에이스로 성장한 신종훈(23, 인천시청)과 각종 대회에서 한국을 빛내왔던 대표팀의 최고참 한순철(28, 서울시청)이 그 주인공이다.
▲ '복싱, 너는 내 운명'

묘한 일치다. 두 선수가 복싱을 시작했던 시기가 거짓말처럼 똑 들어맞는다. 신종훈과 한순철은 나란히 중학교 2학년 때 글러브를 꼈다. 어렸을 때부터 모든 운동을 좋아하던 신종훈은 중2 때 복싱체육관을 나가는 친구를 우연히 따라갔다 복싱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만다.
신종훈은 복싱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복싱을 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꿈이 없던 소년의 가슴에 커다란 꿈이 자리했고, 인생의 목표와 희망이 생겼다.
복싱 덕분에 얻은 것도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넉넉치 않던 집안 형편이었지만 신종훈이 각종 대회를 휩쓴 덕에 경제적인 부 또한 얻을 수 있었다. 아마추어라 큰 돈은 아니지만 대회 우승 상금과 국가대표 수당 및 실업팀 입단 시 계약금 등으로 제법 쏠쏠한 소득이 따랐다. 가정이 더욱 화목해졌음은 물론이다.
한순철은 중학교 2학년 때 체육 선생님의 추천으로 복싱을 시작했다. 신종훈의 모교인 설악중에는 레슬링부와 복싱부가 있어 두 가지의 선택권이 있었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할 필요가 없었다. 레슬링은 몸무게가 안돼 복싱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
한순철에게 복싱은 한마디로 '청춘'그 자체다. 15살 때 복싱 글러브를 낀 뒤로 단 한 번도 복싱에 등을 돌린 적이 없다. 10대 중반부터 20대 끝자락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복싱과 함께 청춘을 보내며 지금까지 걸어왔다.
▲ 든든한 지원자들
신종훈에게는 가족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 고향인 구미에 내려갈 때마다 식탁에는 어김없이 인삼과 백숙이 올라온다. 선수촌에 올라갈 때는 하나뿐인 아들에게 귀한 꿀을 손에 쥐어준다. 누나는 시집을 가기 전 엄마 역할을 대신 했을 정도로 남동생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었다.
지원자는 또 있다. 동갑내기 여자친구 김혜인(23) 씨다. 국가대표 상비군을 지낸 고성군청 소속 사격 선수다. 경북체고에서 같은 반이 된 이후로 풋풋한 사랑을 키워왔다.
신종훈은 "혜인이를 2주에 한 번 정도밖에 못 만나서 아쉽다"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혜인이와 결혼을 하기 위해 장모님께 허락을 받았다. 반드시 메달을 목에 걸고 멋지게 프로포즈할 것이다"고 공언했다.
한순철의 본래 지원자는 부모님이었지만 아내를 만나고 바뀌었다. 2009년에 만나 아기도 낳았지만 올림픽 이후 결혼식을 올리기로 약속한 임연아(22) 씨는 아직 대학생 신분이지만 간 때문에 고생하는 한순철을 위해 헛개나무열매와 민들레로 약을 만들고, 보약도 지어주며 사랑이 듬뿍 담긴 내조를 하고 있다.
2살배기 귀여운 딸 도이도 더없이 큰 힘이다. 런던서 금메달을 따게 되면 "연아 도이야 사랑한다"고 외치며 하트를 그리겠다는 한순철이다. 그만큼 가족을 사랑하는 그다.

▲ 최대 무기는 빠른 스피드와 스트레이트
최경량급인 라이트플라이급(49kg이하)의 신종훈과 밴텀급(60kg이하)의 한순철은 모두 상대 선수들보다 우월한 신체조건을 갖고 있다. 신종훈의 신장은 168cm이고 한순철은 178cm로 같은 체급의 선수들이 대개 각각 160cm대, 170cm대 초반인 것을 감안하면 유리하다.
장단점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신종훈은 본인의 장점으로 '빠른 스텝과 스트레이트'를 꼽았다. 한순철도 후배의 장점으로 "펀치 스피드와 스텝이 좋고 연타능력도 훌륭하다"고 말했다.
반면 후배의 단점으로는 "링 위에서 흥분을 하는 경우 자기 분을 못 이겨서 시합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종훈 본인도 "지고 있으면 흥분하게 돼 오버페이스를 보여 더욱 공격적으로 움직이다가 얻어 맞는다"고 설명했다. 다행인 것은 최대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파워가 꾸준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좋아졌다는 것이다.
한순철은 본인의 장점으로 주저없이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들었다. 신장에서 우위가 있다보니 멀리서 날리는 스트레이트에 최대 강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 선수가 가까이 접근했을 때 필요한 '훅과 어퍼컷'에 약점을 보인다"고 말했다.
신종훈도 선배의 장단점에 대해 "오른손 스트레이트와 스텝이 좋고 스피드도 빠르다"며 "상대가 붙어있을 때 잘 못 때린다. 아무래도 단거리에서는 파워가 좋은 선수들이 유리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올림픽에 나서는 이들에게 콕 집어서 라이벌로 꼽을 만한 선수는 없다. 올림픽에 나오는 선수들의 실력이 백지 한 장 차이이기 때문이다. 두 선수 모두 "특정한 라이벌은 없다. 모든 선수가 경계대상이다"고 말하는 것처럼 방심은 패배를 부르는 지름길이다.
▲ 천당과 지옥을 오간 그들. 목표는 오로지 금메달!
자나 깨나 구슬땀을 흘렸던 노력의 결실은 좋은 성적으로 나타났다. 신종훈은 첫 국제대회 참가였던 2009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깜짝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복싱을 좋아하던 소년은 그렇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복싱 스타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금메달을 목표로 출전했던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쓰디쓴 좌절을 맛봤다. 세계선수권 동메달리스트 신종훈은 아시안게임 8강 탈락이라는 믿기 힘든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복싱을 시작한 뒤로 가장 슬펐던 순간도 이때였다.
'심기일전'한 신종훈은 2011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화려하게 부활한다. 그토록 바라던 런던 올림픽 출전을 확정짓는 순간이었다. 신종훈은 "올림픽 티켓을 획득한 뒤 정말 기분이 좋아서 계속 울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신종훈에게는 기억에 남을 만한 특별한 대회였다.
한순철은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수확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큰 국제대회에서 처음으로 따낸 은메달이이었기에 기쁨도 두 배였다. 한순철은 복싱을 시작한 뒤로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도하에서 은메달을 따냈을 때"를 꼽으며 복싱 인생 최고의 순간을 떠올렸다.
그러나 한순철은 2년 뒤 청운의 꿈을 안고 출전한 2008 베이징 올림픽서 체중 조절에 실패하며 16강 탈락의 아픔을 겪는다. 장기간의 준비 끝에 첫 출전한 올림픽이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절치부심'한 한순철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다시 한 번 메달을 목에 건다. 비록 동메달이었지만 강자들이 많은 아시안게임서 얻은 값진 수확이었기에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천당과 지옥을 오갔던 두 선수의 주먹은 이제 런던을 향해 있다. 목표는 같다. 오로지 금메달이다. "복싱은 다른 종목에 비해 인기가 없고 지원이 미약한 것이 사실이다"며 24년 만에 금메달을 꼭 따내 전 국민에게 복싱을 알리고 싶다는 신종훈과 한순철. 그들의 '금빛 펀치'는 이미 금메달을 향해 정조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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