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이 두 손을 들어올렸고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관중석에서는 함성이 터져나왔고 2골을 터뜨리며 승리를 이끈 용병 케빈 오리스가 포효했다. 선수들은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서로를 얼싸 끌어안았다.
그렇게 모두가 승리의 기쁨에 취해있을 때 그라운드에 쓰러져 얼굴을 가린 채 뜨거운 눈물을 쏟아낸 선수가 있었다. 프리킥 스페셜리스트 '형컴' 김형범(28)이었다.
꼴찌 대전 시티즌이 어린이날인 지난 5일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 11라운드 홈경기서 선두 수원 삼성을 2-1로 격파하며 불의의 일격을 날렸다. 홈에서 수원에 유독 강한 모습을 보이던 대전의 이날 승리는 10대 11이라는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거둔 것이라 더욱 짜릿했다.

케빈의 선제골로 앞서가던 대전은 전반 34분 정경호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라돈치치를 막다가 파울을 범하고 퇴장 당하며 경기를 어렵게 풀어갔다. 그러나 대전 선수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양쪽 날개가 중원을 휘저었고 상대에 결코 뒤지지 않는 장악력을 선보였다. 미드필더 4명이 종횡무진했고 선수들은 정경호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전력으로 뛰었다. 승부를 결정짓는 골은 케빈의 발끝에서 나왔지만 이날 대전의 MOM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운 모든 선수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김형범은 단연 빛났다. 대전의 공격 과정 대부분은 김형범을 거쳐 만들어졌고 적극적인 돌파와 드리블로 수원 진영을 헤집었다. 케빈의 선제골 역시 문전 오른쪽에서 올려준 김형범의 절묘한 크로스에서 탄생했다. 정경호의 퇴장 이후 다리에 쥐가 나서 쓰러질 정도로 열심히 뛴 김형범은 이날 경기의 숨은 공신이었다.
김형범은 K리그 최고의 프리키커로 손꼽힌다. 2004년 K리그에 데뷔한 이후 '프리킥 스페셜리스트'로 주목받았지만 크고 작은 부상 때문에 제 기량을 뽐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결국 김형범은 재기를 꿈꾸며 와신상담의 심정으로 대전으로 임대됐다. 그러나 시즌 초반 팀이 최악의 부진을 겪으며 연패의 수렁에 빠졌고 믿고 따르던 유상철 감독의 경질설까지 나돌았다. 흉흉한 분위기에 마음은 다급해졌지만 부상으로 100%가 아니었던 몸은 쉽게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나 김형범은 이를 악물고 부활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 4월 11일 상주전서 2도움을 기록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데 이어 22일 전남전에서 프리킥골을 성공시키며 대전 이적 후 첫 골을 신고했다. 그리고 결국 이날 경기서 강적 수원을 상대로 맹활약하며 그토록 갈망하던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후 김형범이 흘린 눈물에는 부진한 성적과 승리에 대한 부담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던 대전 선수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대전의 가장 확실한 공격 옵션으로서 경기를 풀어나가는 데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던 김형범의 뜨거운 눈물에 경기장을 찾았던 대전팬은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김형범은 그 순간만큼은 임대생이 아닌 대전의 진정한 스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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