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일수록 강해진다.
'코리안특급' 한화 박찬호(39)는 무너질 듯 하면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지난 5일 대구 삼성전이 그랬다. 4회·6회를 제외한 나머지 4이닝에 모두 주자를 출루시킬 만큼 위기의 순간이 계속 됐다. 하지만 득점권에서 8타수 1안타로 막았다. 비록 볼넷 3개로 밀어내기 점수도 줬지만 안타를 맞지 않으며 대량 실점을 막을 수 있었다.
경기 후 박찬호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대량 실점하지 않고 6이닝 퀄리티 스타트로 막은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날 박찬호는 안타 8개와 볼넷 3개로 11명의 주자를 내보냈지만 홈으로 들어온 주자는 3명밖에 되지 않았다. 노련한 위기관리능력을 바탕으로 6회까지 3실점으로 시즌 3번째 퀄리티 스타트 요건을 채웠다.

1회 2사 만루에서 채태인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줬지만 후속 타자 배영섭을 1루 땅볼로 솎아냈고, 4회 1사 1·3루에서도 후속 타자들을 범타로 잡으며 추가실점을 막아냈다. 5회에도 2사 1·2루에서 진갑용을 2루 땅볼로 잡으며 한숨 돌렸다. 이날 삼성이 기록한 잔루 9개 중 8개가 박찬호가 마운드에 버티고 있을 때 남긴 것들이었다.
실제로 올해 박찬호는 위기에 강한 투수였다. 득점권에서 볼넷 7개를 허용했지만 25타수 3안타로 피안타율이 1할2푼5리에 불과하다. 득점권 피안타율 1할2푼5리는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27명 중 두 번째로 낮은 수치. 득점권 피안타율 전체 1위는 롯데 고원준(0.063)이다. 1할대 피안타율은 박찬호·고원준 포함 7명 뿐이다.
박찬호는 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에도 차이가 큰 투수다. 주자가 없을 때에는 57타수 16안타로 피안타율이 2할8푼1리다. 반면 주자가 있을 때에는 46타수 9안타 피안타율 1할9푼6리밖에 되지 않는다. 1할 가까운 차이가 있다. 주자가 있을 때 볼넷이 9개로 무주자(5개) 때보다 더 많았지만 그만큼 신중한 피칭을 펼쳤다. 주자가 있을 때 맞은 장타도 홈런 하나가 유일하다. 오히려 삼진 4개와 병살타 2개를 잡아냈다.
모든 투수들이 그렇듯 박찬호도 위기일수록 더욱 신중하게 승부한다. 그러나 주자를 둔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승부하는 건 쉽지 않다. 박찬호는 대량 실점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낮게 제구하고 몸쪽과 바깥쪽 코너워크를 활용한다. 5일 대구 삼성전에서 '국민타자' 이승엽과의 맞대결에서 3차례 모두 주자가 있는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승부했지만 가운데로 몰리는 공 없이 몸쪽과 바깥쪽 코너워크에 집중한 게 3연속 뜬공으로 이어졌다.
올해 5경기를 소화한 박찬호의 한 경기 최다실점은 지난달 24일 광주 KIA전에서 기록한 4점. 이날 경기 4실점도 수비 실책 영향으로 자책점은 단 1점 뿐이었다. 노련한 베테랑답게 위기에서도 급격하게 흔들리는 법이 없다. 상대를 강력하게 압도하지는 못해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위기일수록 더 강해지는 투수가 바로 박찬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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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