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은 제압했지만 박한이를 당하지 못했다. '코리안특급' 한화 박찬호(39)의 발목을 잡은 타자는 삼성의 '공격형 2번타자' 박한이(33)였다.
지난 5일 대구 삼성-한화전은 박찬호와 이승엽의 첫 투타 맞대결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결과는 싱거웠다. 어깨 통증으로 컨디션이 완전치 않은 이승엽이 3차례 연속 뜬공으로 물러나며 박찬호에 완패한 것이다. 하지만 삼성 타자들은 박찬호를 완벽히 무너뜨리지는 못해도 충분히 괴롭혔다. 그 중심에 바로 박한이가 있었다.
박찬호와 박한이. 지난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에서 금메달을 함께 차지한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연결고리가 없는 관계다. 하지만 인터벌이 길지 않고, 빠른 투구 템포를 펼치는 박찬호와 타격 준비동작이 길기로 유명한 박한이의 맞대결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관심을 모았다. 결과는 4타수 2안타 1타점. 박한이의 승리였다.

박찬호와의 맞대결 전날부터 박한이는 "박찬호 선배도 사람 아닌가. 기계가 던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며 "투수의 투구 템포가 아무리 빨라도 타자가 준비하지 않으면 던질 수 없다. 투수는 투수대로, 나는 나대로 하는 것이다. 박찬호 선배라도 내 스타일대로 한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 어떤 공이 들어올지 생각하는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경기에서도 2번 타순에 배치된 박한이는 1회말 무사 1루에서 박찬호와 처음으로 마주했다. 첫 타석부터 특유의 장갑을 고쳐 끼고 헬멧을 벗고 쓴 뒤 배트로 홈플레이트를 긋는 특유의 준비동작을 펼쳤다. 박찬호는 발빠른 1루 주자 김상수가 신경 쓰였는지 견제구를 먼저 던졌다. 하지만 박한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정한 준비동작을 반복하며 박찬호의 투구 템포를 흔들었다.
타자의 준비 시간이 늦으니 글러브를 내밀고 포수 미트를 바라보는 박찬호의 인터벌도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박한이는 초구 낮은 슬라이더를 파울로 걷어냈다. 이어 2구째 바깥쪽 131km 체인지업을 밀어 3루수-유격수 사이를 빠져나가는 좌전 안타를 터뜨렸다. 첫 대결부터 공격적인 투구 템포를 끊고, 적극적인 타격으로 안타를 만들어낸 것이다.
두 번째 대결은 2회말 2사 3루에서 벌였다. 박한이는 특유의 준비동작을 이어갔고, 박찬호의 투구 템포도 점점 길어져갔다. 박한이는 파울을 치고 난 뒤에도 타석을 한 바퀴 돌며 박찬호의 템포를 죽였다. 박한이는 투스트라이크 이후 공 2개를 커트한 뒤 7구째 몸쪽 127km 체인지업을 잡아당겨 우익수 앞으로 빠지는 적시타로 연결시켰다. 7구까지 승부하는데 약 3분30초 가량의 시간이 소모됐다. 박한이는 최대 33초 타격 준비 시간으로 박찬호를 괴롭혔다. 군더더기 없이 바로 바로 투구에 들어가는 박찬호의 템포도 박한이 타석에서는 일정치 않았다.
박한이는 4회·6회에는 박찬호를 상대로 1루 땅볼로 물러났지만 1~2회 두 타석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삼성도 1~2회 얻은 2점으로 승리를 지켰다. 박찬호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6회까지 마운드 지키며 퀄리티 스타트했지만, 박한이의 긴 준비동작이 신경 쓰였을 것이다. 이승엽 만큼 박한이와의 다음 승부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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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