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LG와 두산의 잠실 라이벌 매치가 열린 잠실구장에 이상훈이 나타났다.
물론 진짜 이상훈은 아니었다. 이날 LG 좌완에이스 봉중근은 이상훈을 연상케 하는 가발을 쓴 채 어린이날 이벤트에 임했다. 그리고 이상훈이 했던 것처럼, 9회 마운드에 올라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경기 후 봉중근은 “어린이날에 승리해 너무 기쁘다. 지난해 야구를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며 “이상훈 선배를 보면서 야구 선수에 대한 꿈을 키워왔었다. 만일 마무리 보직을 맡는다면 이상훈 선배만큼 잘하고 싶다”고 밝혔다.

LG의 마무리 잔혹사는 이상훈이 팀을 떠난 2004시즌부터 시작됐다. 2003시즌 30세이브를 올렸던 이상훈이 이적 및 은퇴를 결심한 후 LG는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뒷문불안에 시달려왔고 가을야구와도 인연을 맺지 못했다.
LG 야구를 지켜봤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봉중근에게도 이상훈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다. 봉중근은 2007시즌 국내 무대 복귀 당시 마운드 위에서 긴 머리를 휘날리며 누구보다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냈던 이상훈의 등번호였던 47번을 달았다. 자신을 야구선수로 이끈 롤모델의 활약을 재현한다는 각오였다.
비록 51번으로 등번호를 바꿨지만 봉중근은 2008시즌부터 이상훈이 그랬던 것처럼, LG의 확고부동한 에이스로 활약했다.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을 올렸고 올림픽과 WBC등 국제대회에서도 한국 대표팀 마운드 중심에 자리했다. 그리고 올 시즌에는 마무리투수로서 자신이 그토록 동경했던 선배의 모습을 재현할 기회를 잡게 됐다.
5일 경기 전 LG 김기태 감독은 “6월이 되면 봉중근이 연투가 가능한 상태가 될 것이다. 6월부터는 봉중근이 마무리투수로 뛸 수도 있다”며 100% 컨디션의 봉중근을 6월부터 마무리로 기용할 뜻을 전한 바 있다. 현재 LG는 레다메스 리즈 마무리 카드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집단마무리 체제를 행하고 있는데 이는 봉중근이 연투가 불가능한 상태기 때문이다. 즉 9회 마무리투수가 올라올 상황에서 가장 먼저 등판이 고려되는 투수는 봉중근이며 봉중근이 전날 등판한 경우 집단마무리 체제로 불펜을 운용한다.
결국 봉중근이야 말로 LG가 지닌 가장 확실한 마무리투수 카드가 될 수 있다. 정상 컨디션의 봉중근은 좌·우타자에게 모두 강하며 직구의 구위와 제구력 또한 뛰어나다. 상대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는 결정구 체인지업이 있고 리그 최정상급의 견제 능력은 주자를 공포에 떨게 만든다. 무엇보다 마무리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인 강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봉중근이 마무리투수로 성공할 확률은 높다.
김 감독은 “한 시즌을 전체로 놓고 봤을 때 특급 마무리가 있는 팀과 없는 팀의 체력 소모는 엄청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며 “과거 선동렬 감독님, 현재 오승환처럼 특급 마무리가 있으면 상대팀은 포기가 빨라진다. 그만큼 편안 마음에서 마지막 이닝을 치를 수 있게 되고 그게 133경기 누적되면서 경기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고 특급 마무리투수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
오는 6월, 봉중근이 김 감독이 그토록 찾던 마무리투수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을지, 그리고 LG의 마무리 잔혹사도 종결시킬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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