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톱밴드2'가 다소 애매한 정체성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지난 5일 뚜껑을 연 이 프로그램은 열정 가득한 아마추어들의 축제인 엠넷 '슈퍼스타K'와 프로들의 피 튀기는 대결인 MBC '나는 가수다'의 중간쯤에 위치했다. 신선한 새 밴드들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히트곡을 보유한 유명 밴드가 동일 선상에서 경쟁을 펼친 것. 이는 프로끼리 싸우는 '나는 가수다'보다 더 잔인하면서, 필연적으로 아이러니에 맞닥뜨리는 구도다.
이날 방송에는 이미 상당한 히트곡과 인지도를 보유한 트랜스픽션을 비롯해 슈퍼키드, 데이브레이크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다른 출연자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강력한 팀이자, 스스로는 '망신'의 위기에 선 유명 밴드였다. 이들이 굳이 이 프로그램에 나온 것은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서. 트랜스픽션은 "결성 10년이 됐는데,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톱밴드'에 출전했다"고 말했으며, 대부분의 참가팀들은 우승 보다는 음악을 선보일 수 있는 자리여서 기꺼이 동참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엠넷 '슈퍼스타K3' 톱10에 들었다가 자진하차했던 예리밴드는 "우리는 가십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음악을 선보이고 싶어 '톱밴드2'에 나왔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유명 밴드들의 무대를 한번에 '맛 보듯'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 거의 없었기 때문. 독특한 가사로 눈길을 모은 장미여관의 '봉숙이'는 벌써 온라인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기도 하다. 인디 밴드들의 음악을 대중에 전파하는 순작용이 일어난 셈.
그러나 경연이 치열해질 수록, '톱밴드2'의 아이러니도 눈에 띌 전망이다. 이미 히트곡이 있고, 후배 밴드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된 이들 팀이 우승 상금 1억원을 향해 달리는 경연의 모양새는 좀 우스워질 수도 있다. 만약 유명팀이 다른 인디 밴드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다면, 그게 현 가요계에 어떤 '의미'를 갖게 될 것인지도 애매하다.
'톱밴드2'는 아마추어의 열정이 주는 풋풋한 매력과 프로들의 목숨 건 혈투가 주는 비장미를 모두 놓칠 수도 있는 셈이다. 경연이 계속되면서, 유명 팀들만 올라가 '나는 가수다'에 가까워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심사위원들의 역할도 아리송해진다. 실제 1회 방송에서 10년차 트랜스픽션을 향해 "연주가 짜임새 있다"는 평가를 내리는 모습은 영 어색했다.
지난 방송에선 슈퍼키드가 '죽음의 조'에 배정되면서 탈락하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반전 없는 결과를 만들어낸 상태. '비장한' 프로 팀들의 '풋풋한' 오디션을 표방하게 된 '톱밴드2'가 '슈퍼스타K'와 '나는 가수다' 사이 어떤 지점에서 포지셔닝을 성공해 시청자들의 공감과 감정이입을 끌어낼 것인지 관심을 모으게 됐다.
한편 6일 시청률조사회사 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톱밴드2’ 1회는 전국 기준 2.3%의 시청률을 기록, 지난해 시즌1 첫방송이 기록한 5%에서 반토막난 성적을 받아들었다. 1회에선 트랜스픽션, 학동역 8번출구, 데이브레이크, 마그나폴, 4번출구, 장미여관, 시베리안허스키, 예리밴드가 다음 단계로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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