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다경기출장 신기록' 오석환 심판, "2002년 KS 가장 극적"
OSEN 강필주 기자
발행 2012.05.08 06: 25

"무슨 날이다 싶으면 여지 없지뭐."
승자의 미소와 패자의 한숨이 갈리는 프로야구 현장. 그런데 지난 4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KIA와 넥센의 경기는 3-3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연장 12회말 4시간 7분이 걸렸지만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무슨 날이다 싶으면 귀신 같다니까. 꼭 신고식 같은 걸 치르네. 생일이나 약속이 있으면 꼭 무슨 법칙 같아. 오늘도 그럴 줄 알았지."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위원 오석환(48) 차장의 한숨이다. 그러나 감정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웃고만 있다. 오 차장은 이날 구심으로 나서면서 '역대 통산 최다 경기 출장' 기록을 보유한 심판으로 이름을 올렸다. 2215경기. 종전 이규석 심판이 보유하고 있던 2214경기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
1990년 심판활동을 시작한 오 차장은 올해가 23년째가 된 베테랑 중 베테랑이다. 그의 프로야구 첫 경기는 1991년 4월 5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화-쌍방울전. 이후 오차장은 지난 2000년 10월 9일 인천 SK-롯데전 더블헤더 2차전에서 역대  14번째로 1000경기에 출장했다. 이어 지난 2009년 9월 1일 잠실 두산-한화전에서는 역대 2번째로 2000경기 출장기록까지 돌파했다.
그는 "긴 시간 동안 이 일에 종사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오 차장은 "언제까지 계속할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해서라도 아프지 않고 오래 이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승엽의 동점포, 마해영의 역전포
지난 6일 광주구장에서 만난 오 차장이 2215경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일까.
그는 "2002년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LG의 6차전"이라고 밝혔다. 3승2패로 앞선 삼성이었지만 9회초까지 9-6으로 뒤져 있어 패색이 짙었다. 그러나 이승엽의 동점 스리런, 마해영의 역전 끝내기 솔로포가 기적처럼 백투백으로 잇따라 터진 삼성이 감격스런 우승을 차지했다.
또 그는 "2009년 잠실구장에서 KIA와 SK가 맞붙은 한국시리즈 역시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3승3패로 맞선 양 팀은 5-5로 팽팽하던 9회말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으로 감격의 우승을 안았다.
프로야구사에서도 손꼽히는 대결이다. 그 속에 오 차장은 항상 함께 해왔다.
▲고마운 아내, 잘 커준 딸과 아들
베테랑 심판으로서 당당히 자리매김한 오 차장이다. 그러나 가슴 한 켠은 늘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함께 존재했다. 오 차장은 부인 장진앵(47) 씨와 사이에 딸 오예은(18), 아들 세현(16)을 두고 있다.
"어제(5일) 같은 어린이날이나 공휴일이면 직업상 항상 집에 없다. 방학에도 애들과 함께 놀아주지 못했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은 오 차장은 "대신 전국을 걱정 없이 편히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아내 덕분이다. 집안일을 걱정하지 않도록 만들어줬기 때문이 아니겠나"라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또 그는 "아내나 아이들이 악성 댓글 때문에 아빠의 직업을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다"면서 "정말 '이렇게 욕 먹어 가면서 일을 해야 하나' 돌아볼 때도 많다. 하지만 가족이 있어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심판들은 이동거리가 선수단보다 더 많다. 무조건 3연전을 기준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노고를 선수단도 잘 알고 있다.
선수단의 시각은 어떨까. 오 차장은 "전에는 구단이 심판을 적으로 여기기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TV를 통해 모든 것이 다 공개되는 만큼 오심은 오심일 뿐"이라며 "이제 선수, 감독도 동업자라고 인식하고 있다. 야구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행동 하나에 희비, 짜릿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23년째 그라운드에 서 있게 하는 것일까.
오 차장은 "사람이 몇 년에 한 번 느낄까 말까한 극도의 긴장감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느껴야 한다. 당연히 속이 좋을리가 없다. 또 볼에 한 번 맞기라도 하면 얼얼하다. 목이나 등이나 디스크 증상이 있을 정도로 성한 곳이 없다. 한마디로 골병이 든다"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러나 "내 행동 하나에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그럴 때면 짜릿한 희열이 느껴진다"고 그는 말했다. 승부의 향방이 결정날 수 있는 순간 세이프와 아웃 판정에 한 팀은 웃고 한 팀은 울고 만다. 그런 중대사를 결정해야 하는 만큼 힘겹다. 하지만 그에 따른 관중, 선수단의 표정에 짜릿함을 느끼는 것 또한 사실이다.
또 "멋진 투수들을 만나면 전율이 느껴질 때가 있다. 3구 삼진을 직구로 내리꽂는다든가, 딱 봐도 볼이 쑥쑥 들어오는 투수를 보면 등에서 전율이 흐를 때가 있다"고 돌아봤다. 포수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투수의 볼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직업의 특권이기도 하다. 
오 차장은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포청천'을 꿈꾸는 후배들을 향해 "초심을 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처음의 마음을 유지했으면 한다"면서 "매 순간순간 집중력을 가지면 오심은 줄어든다. 2000경기, 아니 3000경기 이상을 뛰는 후배가 나와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가장 많은 경험을 지닌 '포청천' 오석환은 지금도 어느 경기장에서 떨리는 긴장감에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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