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올림픽 결승서 최고의 명승부를 펼쳤던 2살 터울의 박성현(29) 감독과 이성진(27, 이상 전북도청)이 사제지간으로 돌아왔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전. 당시 대표팀 막내였던 19살 이성진은 3엔드(1엔드 각 3발로 4엔드까지 총 12발 120점 만점)까지 21살 언니 박성현에게 83-81로 앞섰다.
마지막 4엔드서 이성진이 날린 첫 번째와 두 번째 화살은 각각 8점과 9점. 반면 박성현은 9점과 10점을 쏴 총 합계 100-100으로 동점 상황.

최종 한 발에 의해 금메달의 주인공이 가려지는 순간이었다. 승리의 여신은 마지막 8점을 쏜 이성진이 아닌 10점을 적중시킨 박성현에게 미소를 지었다.
8년 전 그렇게 살떨리는 승부를 펼쳤던 라이벌이 지금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돌아왔다. 전북도청의 사령탑이 공석이 되면서 지난해 3월부터 박성현 감독이 팀을 맡아 시작된 묘한 운명이다. 하지만 둘은 사제지간 이전에 라이벌이었고 그 전에 절친한 팀 동료이자 친한 언니 동생 사이였다.
지난 8일 대표팀이 2차 양궁 월드컵을 마치고 입국하는 인천공항에서 이들을 만났다. 박 감독은 대표팀이 입국 심사를 오랫동안 받아 공항에서 1시간이 넘게 이성진을 기다렸다.
박 감독은 "내가 21살이 되던 2004년, 성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북도청에 들어오면서 소속팀서 같이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며 "그때부터 양궁에 대한 고민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도 상의하는 언니 동생의 친한 사이였다"고 말하며 "처음엔 언니였지만 지금은 감독이다"고 농담을 던졌다.
이제 동생에서 제자가 된 이성진은 "박 감독님은 운동을 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돼 주신다"며 "같은 팀에 있으면서 계속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런던 올림픽 대표에 선발되는 데 있어 정말 큰 도움이 돼 주셨다"고 박 감독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박 감독은 대표팀 감독이 아님에도 불구, 대표팀 훈련 장소인 태릉 선수촌에 나와 이성진의 자세와 몸 상태 등을 꼼꼼히 체크해주는 열성을 보이며 든든한 지원자가 돼 주고 있다.
그 덕에 이성진은 올림픽 대표 선발 평가전과 1, 2차 월드컵서 총합 70점의 평점을 따내 기보배(55점)와 최현주(40점)를 2, 3위로 밀어내고 1위로 런던행 티켓을 잡았다. 런던으로 출국하기 전까지 박 감독이 계속해서 지원해주는 것은 물론이다.
공항에서 만난 이성진의 부모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아버지 이범웅(50) 씨와 어머니 김옥순(49) 씨는 "둘은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다"며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국가대표에서 함께 했고, 2004년부터 지금까지 소속팀서 오랜 시간 같이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더없이 좋다"고 딸이 박성현 감독의 지도를 받는 것에 대해 큰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제 우리는 아테네 올림픽 단체전서 이들이 같이 쏘아 올렸던 금빛 화살을 이성진이 이어받아 런던 올림픽서 금빛 활시위를 당겨주길 기대하고 있다.
8년 전 아테네 올림픽 여자 개인전서 나란히 결승에 올라 온 국민에게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던 이들이 스승과 제자의 묘한 운명으로 만나 런던 올림픽 '금빛 프로젝트'를 무사히 완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doly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