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AG야그콘서트]박찬호가 이긴 게임 - 보크 논란
OSEN 박선양 기자
발행 2012.05.09 12: 40

▲저기요 할 말 있어요
복귀 후 이제껏 그의 멘트들은 잘 관리돼서 출시됐다.
늘 상대방을 배려하고, 스스로는 낮추는 자세였다.

그런데 아주 오랜만에 그의 속에 있는 얘기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보크 얘기다.
“공을 떨어뜨려 보크 판정을 받았는데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포수 사인을 보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투구 동작 시작 전이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투수판을 밟았다는 이유만으로 보크가 판정됐다.”
“(김)선우와도 통화를 했다. 며칠 전 자기도 그랬는데 보크 판정이 나지 않았다고 하더라. 룰을 적용하려면 똑같이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아쉬운 게 있다. 박찬호라서 그런 건가"라며 "정확한 룰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기자들이 다 듣는 데서 한 얘기다.
내용은 심판에 대한 직격탄이나 다름없다.
이 정도 멘트를 날릴 수 있는 야구인이 누가 있을까?
아마 김성근 감독 정도라면 가능할거다.
그런데, 현역 선수가 그랬다.
대단하다. 박찬호의 용기, 소신.
▲보크? 보크성 플레이?
현장에 있던 기자들, 당사자인 최규순 심판을 취재했다.
(이런 공평하면서도 부지런한 사람들을 봤나.)
물론 최 심판은 판정이 정확했다고 해명했다.
구체적인 상황을 복기해줬다. 룰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그 중 한 매체에 보도된 그의 멘트가 눈길을 끌었다.
“찬호가 보크성 플레이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러나 퀵피치(와인드업 시 글러브를 상체에 대고 잠시 쉬지 않고 곧바로 투구를 하는 것)는 안 하는 것 같더라. 우리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보크성 플레이? 처음 듣는 말이다.
이거 듣기에 따라서는 심각한 얘기일 수 있다.
박찬호는 미국에서도 종종 보크 탓에 애를 먹었다.
통산 14개. 이중 11개는 다저스 시절(2001년 이전)에 나온 것이다.
따지자면 보크 많이 하는 투수는 아니다.
하지만 리그가 바뀐 투수에게는 신경 쓰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작년 일본에서도 그랬다.
그런데 그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 심판이 의구심을 표현했다.
그것도 팀장급 심판이 날린 멘트다.
무슨 의미일까?
▲3초 늦은 판정의 이유
유능한 심판이 보크도 잘 본다. (순전히 필자의 기준이다.)
왜? 그만큼 돌발적이다. 언제 어떤 식으로 나타날 지 전혀 예고가 없다.
룰도 복잡하고 까다롭다. 집중력, 판단력, 순발력이 모두 요구된다.
당연히 가장 어려운 판정이다. 때문에 놓치는 경우도 꽤 있다.
작년에도 잠실에서 유명한 사건이 있었던 것, 기억들 하실 거다.
이번에도 3초 정도 늦게 판정이 나왔다.
최규순 심판은 “박찬호가 투수판을 밟았는 지 확인하려다 보니 걸린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중계 화면을 보자.
2루 주자 진갑용은 박찬호가 공을 떨어트리자마자 손으로 가리키며 3루심 쪽을 쳐다본다.
물론 이 보크에 대한 판정은 4명의 심판 중 누가 해도 관계없다.
따라서 투수판이 잘 보이는 3루심이나 1루심이 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3초가 흐른 것은? 놓친 거다.(보크가 맞다면)
 
 
박찬호가 공을 떨어트리자 진갑용이 곧바로 손으로 지적하며 3루심 쪽을 쳐다본다. 타자도 타석을 벗어나 같은 쪽을 바라본다. 
▲심판의 선입견이 중요한 이유
그래서 투수 개개인에 대한 심판들의 선입견은 아주 중요하다.
‘보크 안 하는 투수’라고 입력돼 있느냐, ‘보크성 플레이를 하는 투수’라고 입력돼 있느냐는 큰 차이다.
당연히 후자일 경우 더 신경을 곤두세우고 본다. 그래서 잡힐 가능성도 크다.
때문에 최규순 심판의 ‘찬호가 보크성 플레이를 많이 하는 편’이라는 멘트는 간단히 받아들일 문제가 아니다.
자칫 ‘박찬호 vs 심판’의 갈등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긴장감이 흐른다.
다행히 하루 만에 팽팽한 긴장감은 풀렸다.
다음 날 박찬호가 다시 기자회견을 자청해 깔끔하게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덕아웃에 나와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명확하게 밝혔다.
“보크가 맞다. (공을 떨어뜨린 보크) 경험이 없었고 확실하지 않았다. 애매한 부분이 있었는데 최규순 심판이 정확하게 봤다. 보크가 맞다.”
굳이 왜 해명하려 했는 지 이유도 설명했다.
“내 생각 때문에 팬들이 보크가 아니라고 잘못 알 수 있다. 오해할 수 있으니 그런 부분을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 정정하겠다. 나도 팬들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어 “한국야구를 비하할 뜻은 없었다”고 말했다.
▲논란의 재구성
본인이 인정했다. 산뜻하게 정리됐다.
역시 스포츠맨이다. 대스타답다.
하지만 궁금증이 하나 남는다.
많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그 정도 되는 선수가 불쑥 이런 논란을 만들었을 리는 없다.
왜 그랬을까. 왜 하루만에
곁가지를 치고 이슈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보크다, 아니다는 핵심이 아니다.
그는 평소 심판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충분히 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팬들의 지지도 받았다.
하루 만에 잘못 인정하면서 ‘역시 쿨하군’ 하는 말도 들었다.
심판과는 더 이상 불편한 각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
시작은 불리한 구도였다. 감히 심판에게, 선수가…
하지만 그는 결국 다 얻었다. 대단하다.
무릎을 치며 감탄한 기발한 대목이다.
라소다 감독의 등장이다.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보크 맞다고 하더라.”
새누리당, 민주당, 통합진보당에 묻고 싶다.
그 쪽 전략기획팀에 이 정도 두뇌 있는가?
/ 백종인 (칼럼니스트 /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sirutani@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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