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오선진에게 무슨 말을 한 것일까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2.05.12 13: 01

투수는 어떤 경우에도 야수를 탓하지 않는 게 관례다. 마운드에서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코리안특급' 한화 박찬호(39)는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올해 한화 야수들이 거의 매경기 답답한 플레이를 보였지만 박찬호는 절대 표정이 일그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1일 청주 롯데전에서 박찬호는 그답지 않게 마운드에서 액션이 많았다. 0-1 뒤진 무사 2루에서 김주찬의 번트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3루를 향하던 2루 주자 문규현을 잡기 위해 던진 송구가 약간 빗나가며 뒤로 빠지자 소리를 지르며 큰 동작으로 아쉬워했다. 자신의 한국무대 첫 실책이 실점으로 연결돼 자책의 의미가 강했다.
계속된 무사 2루. 박찬호는 번트 동작을 취한 조성환에게 직구를 던졌다. 그러나 보내기 번트를 의식했는지 박찬호의 직구 구속은 136km에 그쳤고 재빨리 강공으로 전환한 조성환이 공을 때렸다. 타구는 박찬호의 키를 넘어 중견수 앞으로 굴러갔고, 2루 주자 김주찬이 홈까지 달렸다. 스코어가 0-3으로 벌어지는 아쉬운 실점이었다.

조성환에게 안타를 맞은 후 박찬호는 유격수 오선진을 향해 무언가를 말했다. TV 중계 화면에 잡힌 박찬호의 표정이 좋지 않았고, 허를 찔린 적시타를 맞은 직후라 '수비에 불만을 나타내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살 만했다. 그동안 이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던 박찬호이기에 더욱 의아한 장면. 박찬호는 오선진에게 무슨 말을 했던 것일까.
경기 후 오선진은 "견제와 베이스커버에 대한 이야기였다. 박찬호 선배가 견제를 한 번 하려고 하셨는데 내가 제대로 보지 못하고 베이스커버를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사 2루에서 타자 조성환은 보내기 번트 모션을 취한 상태. 2루 주자 김주찬도 발이 빠르기 때문에 어떤 작전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박찬호도 2루를 거듭 주시하며 견제 의사를 나타냈으나 오선진이 2루 베이스로 들어가지 않았다.
투수가 2루 주자를 견제하기 위해 몸을 틀었는데 유격수가 베이스커버를 들어오지 않아 정상 수비 위치에 있는 유격수에게 공을 던지면 보크가 된다. 이미 박찬호는 세트포지션에서 2루 주자를 보며 뜸을 들인 상태였기 때문에 발을 풀기도 애매했다. 결국 공 자체도 힘 없이 들어갔고, 페이크 번트 슬래시를 펼친 조성환에게 공략당하고 말았다. 투수와 유격수 사이의 호흡에 있어 아쉬운 부분이었다. 박찬호가 오선진에게 지적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럴 만했다. 이날 오선진은 주전 이대수를 대신해 올 시즌 처음 선발 유격수로 출장했다. 박찬호 경기에서 유격수를 맡는 것도 처음이었다. 박찬호와 호흡을 맞출 기회가 많지 않았고, 이 경기를 통해 투수가 견제 모션을 취하면 베이스커버를 들어가야 한다는 야구의 정석을 몸소 깨달았다. 박찬호는 불만을 나타낸 게 아니라 기본 플레이에 대해 설명을 한 것이었다. 지적은 바로 바로 해야 효과가 있는 법이다.
실제로 박찬호는 4회 2사 2·3루에서 오선진이 김주찬의 타구를 한 번 빠뜨렸지만 곧바로 공을 캐치한 후 재빠른 1루 송구로 아웃시키자 박수를 치며 오선진을 맞아줬다. 7회 오선진이 역전타를 치고 강동우의 2루타 때 홈을 밟고 덕아웃에 들어오자 박찬호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함께 기뻐했다. 오선진은 "박찬호 선배님이 뭐라 한 게 아니다. 설명을 하고 격려해주신 것"이라며 오히려 고마워했다. 오선진의 박찬호 효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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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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