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이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나 설레는 단어일 것이다. 어느 종목을 대표하는 선수들의 집합체인 만큼 그 이상 영광된 자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자신이 뛰는 종목의 대표팀을 목표이자, 꿈으로 삼고 하루 하루 땀을 흘린다.
대표팀이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은 아니다. 축구와 야구, 농구 등의 인기 종목 선수들은 많은 사람들이 알아본다. 하지만 비인기 종목의 대표 선수들은 올림픽 같은 국제무대에서 금메달을 딸 때 잠깐이다. 평소에는 별 관심을 안보이다가 대회 때만 반짝 주목을 받기 일쑤이다.
그러나 그런 비인기 종목의 대표팀도 청각 장애인 축구대표팀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들은 축구에서 명색이 한 분야를 대표하는 팀이지만, 이런 팀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가 대다수다. 청각 장애인들이 축구를 한다는 것조차 모른다. 게다가 청각 장애인 축구대표팀은 제대로 된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청악 장애인 축구대표팀의 선수들은 자신들의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지만 대표팀에서 자신들이 뛴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행복에 겨워한다.

청각 장애인 축구는 일반 축구와 차이가 없다. 11인제로 치러지는 것도 같다. 대회에 따라 경기 시간만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규정은 다르지 않다다. 청각 장애인들이 축구를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과연 장애인인가 하는 생각을 잊을 정도다. 청각 장애인들도 일반인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청각 장애인 축구대표팀의 수비수 박재현(30)은 대학교(영남대) 때까지 프로축구 선수를 목표로 뛴 선수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들에게 내색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5급 청각 장애. 그는 남이 멀리서 하는 말은 거의 듣지 못한다. 가까운 거리서도 보청기를 끼거나 입모양을 봐야지 상대방이 하는 말을 알아 들을 수가 있다.
조직력을 바탕으로 하는 축구에서 의사소통이 안된다는 건 매우 큰 약점이었다. 애로사항이 많았고, 그만큼 많이 힘들었다. 그래도 그는 티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장애를 넘어서려고 남들보다 더 이 악물고 뛰었다. 2005년 대학 졸업 후에는 대구 FC의 연습생으로 들어가 프로 선수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훈련 도중 오른쪽 무릎의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바람에 6개월을 쉬게 됐다. 결국 박재현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며 축구 선수의 꿈을 포기했다.

선수의 꿈은 접었지만 축구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치료를 마친 직후 축구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대한축구협회(KFA) 2급 지도자까지 획득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청각장애인들을 위하는 마음에 장애인 지도자 자격증도 3급을 땄다. 열심히 공부를 했다. 박재현은 "일반인들보다 독하게 했다.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일반인처럼 하기는 분명 힘들다. 하지만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라면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그러나 미련이 남았다. 지도자로서 다른 사람들이 축구를 하는 것을 보자니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었다. 박재현은 "미련이 남았다. 다시 해보려고 했다"며 힘들었던 나날을 떠올렸다. 하지만 재도전을 하기에는 나이가 많았다. 그리고 예전 만큼의 기량이 나올지도 미지수였다. 그런 순간에 청각 장애인 축구대표팀에서 제의가 왔다. 평소 관심이 많았던 곳이라 박재현도 솔깃했다. 물론 오랜 시간 동안 선수로 뛰지 않은 만큼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처음 제의를 했던 유병권 경기도 농아인체육연맹 사무국장의 설득에 선수로서의 복귀를 결심했다.
힘들게 한 결정이지만 박재현의 최근은 행복하기만 하다. 자신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표팀이라는 타이틀이 달렸다. 그만큼 노력은 당연하다. 민성동 청각 장애인 축구대표팀 감독은 "노력이 엄청나다. 게다가 지도자 자격증이 있는 만큼 이해력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매우 높다. 그리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훈련을 마치고 항상 훈련일지도 작성하고 있다"며 박재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조언도 귀담아 듣는다. 축구와 관련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조언을 구한다. 특히 다나카 다카코라는 일본인 여성에게서 많은 조언을 듣고 있다. 박재현의 아버지와 사업 관계로 알게 된 다나카 씨는 박재현과 제대로 알게 된 지 2년 반 정도 됐다. 박재현은 시간이 날 때마다 다카코 씨와 차를 마시면서 여러 이야기를 듣는다. 비록 축구와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큰 틀에서 돌아가는 것은 같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나카 씨는 "내가 축구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도와줄 수 있다. 특히 축구가 전세계적인 문화이고, 대표팀이 세계대회에 출전했을 때에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만나는 만큼 문화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조언은 일회성이 아니다. 다나카 씨는 틈만나면 박재현이 훈련을 하는 곳에 찾아와 이야기도 들어주고 있다. 이에 대해 박재현은 "다나카 씨는 사람이 좋고 한국에 많은 관심이 있는 분이다. 축구의 발전적인 측면에서 좋은 경험담을 알려주어서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다"고 했다.
박재현이 이처럼 솔선수범을 하고 다나카 씨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듣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모든 것이 대표팀을 위해서다. 그는 2012년에서야 청각 장애인 대표팀에 합류한 만큼 다른 선수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고 싶어한다. 특히 대표팀 선수 대부분이 말을 못하는 청각 장애를 갖고 있는 만큼 말도 할 수 있고 어느 정도는 들을 수 있는 자신이 그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생각에 오전, 오후, 저녁으로 이어지는 강도 높은 훈련에도 다른 선수들을 다독여 가며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박재현의 꿈은 크지 않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보다는 그저 청각 장애인 축구가 있다는 것, 그리고 청각 장애인들도 어떤 일이든지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할 뿐이다. 그는 "좋은 경기와 성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청각 장애인들도 축구를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며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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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다나카 다카코(아래) / 용인=민경훈 기자 rumi@osen.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