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더 볼을 많이 보는 느낌이다."
탄탄한 마운드를 바탕으로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SK 와이번스. 그러나 외국인 선발 투수 아킬리노 로페즈의 퇴출이 기정사실화 된 것은 물론 최근 선발진의 이닝 소화력이 떨어졌다. 덩달아 잇따른 박빙 승부 연출로 승리조 불펜 투수들의 수고가 늘어났다. 당연히 계투진에 부하가 걸리고 있는 상태다.
이제는 타자들이 힘을 내줘야 할 때. 14일 현재 SK는 3.36의 팀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팀타율은 2할4푼7리(.24707)로 6위에 불과하다. 넥센(.24706)과 KIA(.240)보다 조금 나을 뿐이다. 팀출루율은 더 말이 아니다. 3할2푼4리로 8개 구단 중 맨 아래다.

SK의 팀타율은 5월 동안 가진 10경기에서 2할5푼2리를 기록, 조금 나아지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기대를 밑도는 것이 사실. 6승3패로 좋은 승률을 올린 것은 타선의 집중력이 좋긴 했으나 역시 마운드가 뒷받침 됐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제는 타선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 그동안 SK 타자들은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스윙을 하라"는 이만수 감독의 주문에 따라 공격 시간이 상당히 빨랐다. 거의 3구 이내에 타격을 시도했다. 그렇다보니 경기시간이 평균 3시간을 넘지 않았다. 이는 성적이 따르면서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투수들이 조금씩 균열을 보이자 상황이 달라졌다.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빠른 공격 템포에 상대적으로 투수들이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반대로 상대 투수들은 투구수를 절약하는 효과를 본다는 것. 롯데처럼 비슷한 성향이지만 타격이 좋다면 몰라도 그렇지 못한 SK였다. 결국 공격적인 성향을 조금 줄이기로 결정,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다시말해서 출루율을 높이기로 한 것이다.
기점은 지난 6일 문학 롯데전. 전날(5일) 롯데에 1-3으로 패한 SK 코칭스태프는 경기에 앞서 선수들에게 "좀더 편하게 볼을 보라"고 주문했다. 이는 지난달 24일 최경환 타격 코치가 'Be aggressive(공격적으로)'를 화이트보드에 적어 팀 타자들을 독려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한 적이 있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기도 하다. "타자들이 너무 공격적이었다"는 것이 당시 최 코치의 설명이었다.
사실 SK 코칭스태프는 타자들에게 스윙을 하더라도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볼에 한 해"라는 전제를 붙였다. 하지만 몇년동안 굳어진 타격 패턴을 바로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초구 스윙'에 대해 타자들이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볼을 많이 보라"는 새로운 지시는 SK 타자들에게 숨통을 열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타격 부진을 기술적인 부분에서 찾기보다 상대 투수들의 볼을 좀더 보면서 출루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대체했다.
지난 6일 문학 롯데전까지 20경기 동안 SK 타선의 출루율은 3할1푼8리에 불과했다. 8개 구단 중 최하위. 게다가 볼넷은 롯데(59개)보다 4개 많은 7위(63개), 반면 삼진은 1위(160개)였다. 타율은 낮고 볼넷은 적고 삼진은 높으니 출루율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이는 상대 투수들이 좀더 많은 이닝을 끌고 갈 수 있는 바탕이 됐다.
SK 타선은 8일 잠실 두산전부터 가진 7경기 동안 변하기 시작했다. 27개의 볼넷을 얻어내 한화(32개), 넥센(29개)에 이어 이 부문 3위에 올랐다. 반대로 삼진은 26개의 두산에 이어 27개에 불과했다. 볼넷과 삼진의 비율이 '1:2.54'에서 '1:1'이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출루율도 3할4푼3리로 좋아졌다. 타율도 2할5푼1리로 상승했다.
구단관계자는 "최근 타자들이 볼을 보는 시간이 예전보다 많아졌다. 그러면서 볼넷이 늘었고 대신 삼진이 줄었다. 출루율에서 확실히 효과를 보고 있다. 이기기 위해서는 출루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8일 잠실 두산전부터 타자들이 본격적으로 편하게 타석에 들어서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불안한 마운드 정세다. 하지만 타격에서 이를 메울 수 있는 분위기가 점차 조성되고 있다. 온갖 악재 속에서 하루하루 피말리는 승부를 통해 선두를 수성해야 하는 SK. 그런 만큼 타선에서의 긍정 변화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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