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활에서 사람들은 감추고 싶은 콤플렉스를 가리는 데 의상을 많이 활용한다. 평범한 일상복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단점을 최소화하는 것이 매일의 옷입기에서 목표가 된다.
극적인 요소가 중요한 영화에서는 조금 다르다. 물론 배우의 신체적 단점을 가려주는 것도 영화의상의 역할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이 있다. 인물의 성격과 극의 분위기를 드러내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따라 입기' 욕구를 갖게 하기보다는, 극에 완벽히 녹아들어 흐름을 살려주는 것이 영화 의상의 목표다.

올 봄 관객 앞에 설 영화들은 저마다 이와 같은 목적에 충실한 의상을 선보였다. 하지만 극을 떼어놓고 봐도 화려하다 못해 찬란해, 영화팬들로 하여금 '눈요기'를 기대하게 한다.
▲'후궁: 제왕의 첩', 비극미가 빛나는 궁중의상
여배우 조여정의 파격 노출과 '에로틱 궁중 사극'이라는 타이틀로 개봉 전부터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 영화 '후궁: 제왕의 첩'은 아름다운 의상으로도 최근 영화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후궁'의 배우들은 지난 11일 경희궁 숭정전에서 열린 쇼케이스에서 영화 속 궁중 의상을 입고 런웨이에 섰다. 여주인공을 맡은 조여정은 붉은 치마에 흰 두루마기로 내면의 타오르는 열정과 비극적인 운명을 한 몸에 가진 여인을 표현했다.
미리 공개된 영화 스틸컷에서도 비슷한 스타일의 의상을 입었지만, 길게 뒤로 내린 머리카락과 창백한 색깔의 의상, 모자가 여주인공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대변한다.

모든 것을 가진 왕 역할의 김동욱은 금빛 용이 수놓인 진홍색 곤룡포로 절대자의 위엄을 보여줬고, 비극적인 사랑을 하는 남자 주인공 김민준은 속을 알 수 없지만 무언가를 감춘 듯이 안쪽이 살짝 비치는 검은 의상을 택했다.
'후궁'의 의상은 '친절한 금자씨', '박쥐', '고지전' 등 굵직한 한국영화의 의상을 맡아온 조상경 의상감독이 처음 맡은 사극 의상이다. '후궁' 측은 "역사적 고증을 참조해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럽고 우아한 미를 살리고, 색감과 형태, 소재 등에는 변화를 주었다"고 밝혔다.

▲'차형사', 영화로 만나는 모델 포스
배우 강지환의 10kg 체중 불리기 투혼, 성유리의 패션 디자이너 변신 등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코믹물 '차형사'는 패션쇼 무대를 배경으로 한다. 런웨이와 모델이 등장하는 만큼 의상이 허술해서는 사실감 있는 분위기를 살리기가 어렵다.

'차형사'는 이를 의식한 듯 실제 톱모델 출신의 배우들을 조연으로 다수 기용했다. 각종 영화와 방송에 출연해 온 이수혁 및 신민철, 김영광 등이 완벽한 캣워크를 선보인다. 사전 쇼케이스에서도 또한 유명 디자이너 강동준이 제작한 D.GNAK by KANG.D의 슈트가 런웨이에 등장했다.

코미디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주인공을 맡은 강지환은 산발, 정강이까지 올려신은 양말, 허리띠 위로 늘어진 뱃살 등 '패션 테러리스트'의 모든 면모를 갖춘 모습에서 시크한 패션 모델로 변하게 된다.
쇼케이스에서는 날렵한 모습으로 검은 아우터웨어를 입은 형사로 변신한 강지환과 화이트 미니 원피스로 러블리한 매력을 강조한 성유리가 영화의 '결론'이 될 패셔니스타로서의 모습을 과시하며 '모델 포스'를 풍겼다.

▲'백설공주', 의상으로 보는 성격
고전 중의 고전 '백설공주'를 새롭게 재해석한 릴리 콜린스,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백설공주' 또한 스토리만큼이나 화사한 의상으로 주목을 받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의상감독을 맡았던 세계적인 비주얼 아티스트 이시오카 에이코는 '당찬 백설공주'와 '허영심이 가득한 왕비'를 표현하기 위해 고전적인 드레스에 여러 가지 과감한 시도를 덧붙였다.
판타지답게 실제로 입을 수 있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발랄하고 환상적인 영화 속 분위기에 의상을 맞췄다.

대표적인 것이 백설공주가 파티에서 입는 하얀 '백조 드레스'. 머리 위에 실제로 백조의 긴 목이 달린 듯이 디자인된 이 드레스는 판타지 극의 성격을 살리면서도 고전적인 백설공주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그런가 하면 푸른색이 주를 이루는 활동적인 드레스와 바지는 21세기를 맞은 새로운 캐릭터로의 변신을 표현한다.


왕비 역의 줄리아 로버츠가 입고 나오는 화려한 드레스들 또한 판타지 속 등장인물의 성격을 비주얼로 100% 보여준다. 화려한 레드, 오렌지 컬러에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과장된 디테일로 가득하다. 이는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왕비의 허영심을 표현한 것. '백설공주'의 원작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영화를 보면 의상만으로 캐릭터의 성격을 알 수 있도록 설계된 치밀한 장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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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하늘, 올댓시네마, 흥미진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