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soul을 만나다]‘간멘토’ 간호섭 홍익대 교수
OSEN 이예은 기자
발행 2012.05.15 18: 22

"50대에 갑자기 새로운 일을 하기란 힘들죠. 하지만 디자이너라는 일은 정년이 없어요. 몸에 밴 경험은 아무도 못 훔쳐가니까요. 나만 잘 하면 말이에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듯하지만, ‘나만 잘 하면’의 무게는 꽤 크다. ‘잘 하지 못해서’ 정년같은 건 생각할 틈도 없이 사라져간 디자이너도 얼마나 많은가.
온스타일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4’ 덕분에 ‘간멘토’, ‘팀 간’ 등의 재미있는 별명을 달고 사는 간호섭 홍익대학교 패션디자인과 교수는 ‘나만 잘 하면’의 무게를 달고도 이것저것 하는 일이 참 많다.

수업도 하고, 방송도 하고, 홈쇼핑 일도 하고, 칼럼도 쓴다. 한국과 중국의 패션 교류에도 힘쓴다. 자신의 일을 ‘아주 잘’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간 교수에게서는 세상이 원하는 ‘멀티 플레이어’의 향기가 난다.
이 때문에 디자인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꿈을 품은 젊은이들이 간 교수를 멘토로 꼽는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어떻게 잘 해야 하는지'를 묻기 위해 간 교수를 홍익대학교에서 만났다.
▲비결 1. ‘멀티페서’는 외도하지 않는다
간 교수는 ‘멀티페서’라고 종종 불린다. 위에 언급했듯이 하는 일이 워낙 많아서이다. 그는 빼곡한 스케줄표를 보여주고 “내가 이렇게 살아”라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주말에도 쉴 틈이 거의 없어요. 그나마 가장 한가한 날이 매주 목요일인데, 목요일에는 수업을 끝내면 빨리 학교를 빠져나가서 여유를 즐기려고 해요. 남들은 요새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즐긴다는데, 나는 ‘불목’이야. 하하하.”
간 교수는 ‘멀티페서’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자신이 ‘멀티페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패션 외에는 외도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일을 했지만, 내가 패션을 열심히 하고 거기서 전문가가 됐으니까 그 지식이 필요한 사람들이 와서 나한테 같이 일해보자고 한 거예요. 카페를 차린다든지, 그런 ‘외도’는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왜? 패션만 하기도 바쁘니까.”
간 교수는 “교수냐, 디자이너냐”는 질문도 꽤나 많이 들었다고. 이런 질문에 그는 “나는 교수에서 물러나더라도 패션 디자이너다. 하지만 교수는 지금 내가 디자이너로서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라고 답해왔다.
젊은 시절 치과대학을 포기하고 패션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는 모험을 하면서까지 자신이 떠날 수 없는 분야를 찾아냈다는 것이 그가 멀티페서가 된 비결이다.
▲비결 2. 그 놈의 정 때문에(?)
간 교수는 남다른 과정을 거쳐 패션의 길을 찾아낸 것 외에도 자신만의 특징을 갖고 있다. 바로 ‘인간관계’에 능란하다는 점이다.
간 교수는 “‘작은 인연이 큰 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고, 후배나 제자들에게도 그런 점을 늘 강조한다”고 말했다.
“일하면서 좋은 인간관계를 쌓는 노하우요? 우선 ‘작은 인연이 큰 일이 된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살아요. 그리고 요즘은 시간이 없고 일은 많으니까 일도 골라 하지만, 예전에는 정말 들어오는 일은 전부 닥치는 대로 했어요. 그런데 그 경험이 결국 해야 할 일인지, 아닌지 보는 눈을 만들어주더군요. 또 거절하는 법도 배우게 됩니다. 적당히 좋은 말로 거절하는 방법도 알아야 인간관계를 잘 만들어갈 수 있어요.”
그는 지인으로부터 받았다는 ‘어이구, 그 놈의 정 때문에’라는 문자 메시지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저는 일을 할 때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을 중시해요. 나하고 한 번 같이 일을 했는데, 다시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하면 다음에 뭘 같이 할 수가 없잖아요.”
간 교수는 자신이 학교를 마치고 첫 직장을 구할 때 한 컬렉션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인연으로 뉴욕의 디자이너 브랜드 Kokin에 들어가게 된 경험을 떠올리며 “젊은 나이였지만, 그때부터 작은 인연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학계부터 산업계, 연예계까지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인맥을 자랑한다. 배우 연정훈, 전아민 등은 간 교수와 절친한 사이고, 최근에는 미쓰에이 수지가 간 교수의 저서 '런웨이 하트-런웨이 위의 열정으로 패션을 완성하라'를 읽는 모습을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폭넓은 인간관계를 부러워하는 이들에게 간 교수는 말한다. “저는 이런 쪽에 민감하게 발달했어요. 하지만 이런 데 관심없고 자기에만 몰두하는 예술가도 많아요. 그런 사람들은 또 그렇게 위대해지는 거죠. 남을 부러워할 것도 없고, 무시할 것도 없어요. 같은 다이아몬드라도 모두 깎는 방식과 색깔이 다르잖아요?”
▲비결 3. 휴강도, 지각도 없다
이렇게 ‘정’과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간 교수지만, 학생들과의 수업에서는 칼같은 교수가 된다.
“수업은 나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과의 약속이에요. 15년 동안 교수를 하면서 제 수업엔 휴강이 없었고, 지각 용납도 없었어요. 박사과정이라도 5번 결석하면 무조건 F를 줘요. 이런 걸 견딜 수 없으면 내 수업 안 들으면 되죠. 이런 철칙은 일관성이 중요해요. 지각이나 과제 늦게 내는 건 가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에요.”
하지만 이런 생각으로 사는데도 실수 또한 생긴다. 한 번은 신문사에 글을 넘겨줘야 할 날짜를 일주일 뒤로 착각해, 일식집에서 자필로 원고를 작성하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저녁 약속이 있는데, 글 쓸 시간이 없잖아요. 할 수 없이 대낮에 일식집 방 한 칸에 들어앉아서 자필로 글을 썼어요. 그 시간엔 조용하고 좋거든요.”
긴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분야를 찾고, 그 분야에서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지킬 것은 꼭 지키는 것이 ‘뭐든 잘 하는’ 비결이라고 충고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 요청을 꽤나 많이 받는 간 교수에게 ‘인터뷰에서 이제 그만 물어봤으면 하는 식상한 질문’은 무엇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간 교수는 “신중하게 답해야겠는데”라고 고민하다 답을 내놓았다. “일단 인생관이 뭐냐는 질문이요. 참 답하기도 어렵고 애매해요. 그리고 왜 남자가 패션을 택했느냐는 것! 정말 너무 많이 들은 질문이네요. 이제 시대에도 좀 안 맞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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