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첫 타석이 결승타. 그것도 그룹 회장이 지켜보는 앞에서 쏘아올린 짜릿한 한 방이었다. 한화 신고선수 출신 포수 이준수(24)에게 지난 16일은 잊을 수 없는 황홀한 밤이었다.
이준수가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이준수는 지난 16일 잠실 두산전에서 4-4로 팽팽히 맞선 8회초 2사 2·3루에서 데뷔 첫 타석에 들어섰다. 절체절명의 순간 두산 이혜천을 상대로 좌익수 키를 넘어가는 2타점 결승 2루타를 터뜨리며 한화의 6-4 재역전승을 이끌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켜보는 앞에서 승리를 이끈 한 방이라 인상 깊었고, 철저한 무명선수였던 이준수가 처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이라 더욱 감동적이었다.
▲ 초구부터 과감하게 휘둘렀다

이준수는 지난 13일 처음으로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15일 잠실 두산전에서 8회 대수비로 1이닝을 소화했을 뿐 16일 경기 승부처에서 첫 타석에 들어섰다. 이미 포수 정범모를 교체한 한화로서는 대타를 쓸 수도 없었다. 이준수를 믿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한대화 감독과 김용달 타격코치는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쳐라"고 주문했다. 퓨처스리그 17타수 3안타 타율 1할7푼6리의 이준수였지만 속으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상대 투수는 프로 15년차 베테랑 이혜천. 140km대 초중반 빠른 공을 던지는 좌완 투수였다. 144km 초구 직구부터 이준수의 배트는 과감하게 나갔다. 결과는 파울. 하지만 2구째 144km 직구도 같은 코스로 들어왔고, 짧게 쥔 이준수의 배트가 빠르고 힘있게 돌아갔다. 타구는 전진수비해있던 좌익수 김현수의 키를 훌쩍 넘었다. 2타점 2루타. 2루에서 이준수는 두 팔을 번쩍 들었고, 한화 덕아웃은 난리가 났다. 본부석의 김승연 회장 일행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이준수는 "초구부터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자신있게 치려고 했는데 잘 맞았다"며 "처음에는 타구가 빠질 줄 몰랐는데 공이 뒤로 빠지는 순간 그냥 좋았다"고 말했다. 프로 첫 타석을 2루타 그것도 2타점 결승 2루타로 장식하는 건 흔치 않은 장면. 이준수는 "정말 이기고 싶었다. 팀 분위기가 좋은데 그동안 승운이 따르지 않았다. 팀 승리에 보탬이 돼 너무 좋았다"며 팀을 우선시했다.
▲ 미지명-신고-방출-군입대-신고-정식선수
이준수는 "방출도 되고, 군대도 다녀 왔는데 이렇게 다시 야구를 할 수 있게 너무 행복하다"고 털어놓았다. 곱상한 외모와는 다르게 이준수는 우여곡절이 많은 선수였다. 신일고 출신으로 2006년 쿠바 청소년야구대표팀에 발탁될 만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작은 체구 때문에 2007 신인 드래프트에서 프로팀으로부터 지명을 받지 못했고, KIA에 신고선수로 입단하며 힘겹게 프로의 문을 밟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오래 가지 않았다. 2년 만에 KIA에서도 방출됐다. 그는 "어리고 철없을 때라 야구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그 시절을 떠올렸다. 경찰청 테스트도 떨어진 이준수는 미련없이 현역으로 군입대했다. "야구를 포기했다는 뜻"이었다는 게 이준수의 회고. 하지만 군생활을 통해 야구에 대한 간절함을 느꼈다. 휴가를 나올 때마다 부모님도 "다시 야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고 설득했다. 강원도 철원의 오지에서 군생활했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중대장을 만나 캐치볼을 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조금씩 몸을 만들었다.
지난해 9월. 이준수는 한화에서 테스트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 훈련에 매진했다. 말년 휴가를 나와 현역 군인 신분으로 테스트를 받았다. 우연히 그를 본 강성우 배터리코치는 "캐치볼 할 때부터 마음에 들었다. 덩치는 작아도 동작 하나 하나가 재빠르다"며 구단에 신고선수 영입을 건의했다. 신고선수 신분이었지만 나가사키 마무리훈련부터 애리조나-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도 참가했다. 하루 하루를 절실하게 임한 이준수는 스프링캠프 중 가능성을 인정받고 정식선수로 등록됐다. 그는 "지금껏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과 다시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고마워했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함께 군생활한 전우들에게서도 축하 연락이 쏟아졌다. 1년만의 인생역전이다.

▲ 행운을 기회로 만드는 건 오기
강성우 코치는 이준수에 대해 "운이 좋다"고 말했다. 신고선수 입단 후 나성용이 LG로 이적하고, 박노민이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운 좋게 자리가 난 덕분에 스프링캠프에 참가할 수 있었다. 여기에 신경현·최승환이 부상 등으로 모두 1군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정식선수 등록 첫 해부터 1군 기회를 잡았다. 행운이 따르고 있지만, 결국 행운을 기회로 만드는 건 전적으로 선수 본인에게 달려있다. 이준수는 오기로 행운을 기회로 만들어가고 있다.
짜릿한 2루타의 흥분이 가시지 않았지만 이준수는 스스로에게 불만이 많았다. 다름 아닌 도루 저지 때문이었다. 이날 이준수는 7~9회 3이닝 동안 4개의 도루를 허용했다. 그는 "안타를 쳐 기분이 좋지만 아쉬움도 있다. 수비형 포수인데 도루를 못 잡아 너무 아쉽다. 앞으로 내가 보완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짜릿한 타격으로 만천하에 이름을 알렸지만 기본적으로는 수비에 강점을 갖고 있는 스타일이라는 걸 스스로도 잘 안다.
이준수는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다른 것보다 수비에서 만큼은 뒤지지 않는 포수가 되겠다. 최고가 아니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잃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캠프 때부터 "동작이 빠르다"며 이준수를 주목한 한대화 감독은 "신고선수 출신이라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한 감독의 주문대로 이준수는 한줄기 희망을 쏘아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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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