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돈의 맛'(임상수 감독, 17일 개봉)이 임상수 감독 전작들과의 '퍼즐 맞추기'가 또 다른 숨은 관전 포인트다. 각종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의 집합이 돋보인 외화 '어벤져스'처럼 전작 인물들과의 관계는 발견의 재미를 준다.
'돈의 맛'은 임상수 감독의 전작 '하녀'의 확장판이라고 불릴 만큼 '하녀'의 향취가 곳곳에 배어있다.
먼저, 하녀 전도연이 불에 타 죽는 것을 목격했던 어린 나미가 자라나 김효진이 됐다는 설정이다. 김효진은 재벌집 장녀로 죄책감을 가슴에 품고 사는 '타락한 재벌'인 백식 가족들과 그 모습을 달리한다.

영화 속 나미는 "나 어릴 때 불에 타 죽은 하녀있지? 생각 많이해"란 대사로 영화 '하녀'와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 웃음을 안긴다. '어릴 때 자기 눈앞에서 불타 죽은 하녀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까?'란 고민은 나미의 가슴 깊숙한 곳에 항상 자리잡고 있다.
그런가하면 집안의 극장에서 가족들은 잔짜 영화 '하녀'를 감상한다. 영화 속 영화에서는 전도연이 등장해 이색 풍경을 연출한다. 또 리메이크를 제공한 원작 '하녀'도 극장에서 튼다. 즉, 백씨 집안 가족들이 보는 영화는 전부 '하녀'다. 현실과 허구의 미묘한 조합이다.
백씨 집안의 충직한 비서였다가 돈의 맛을 알아가는 김강우가 분한 주인공 주영작은 역시 임상수 감독의 전작 '바람난 가족'에서 배우 황정민이 분한 주인공 변호사의 이름이다.
'바람난 가족'과 '돈의 맛'을 관통하는 것은 '가족'이다. '바람난 가족'은 남편 주영작, 부인 은호정(문소리), 그리고 시어머니 홍병한(윤여정) 세 명의 바람을 다루며 중산층의 파멸에 대해 이야기했다.
'돈의 맛' 역시 배경이 재벌일 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타락한 로얄패밀리. 혈연 관계로 맺어졌지만 끈끈한 동지 의식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막장 가족의 이야기다. 임상수 감독의 뮤즈가 된 윤여정은 '바람난 가족'에서 남편이 죽자 가족들에게 애인이 생겼다고 떳떳하게 선언한 바 있다. 이 장면은 '돈의 맛'에서도 다른 버전으로 그대로 담겨져 있다.
또 '하녀'에서 "세상은 내게 늘 불친절해"라고 말하는 은이(전도연)에게 "내가 대신 사과할게 미안해"라고 말해주던 은이의 친구로 등장했던 여배우 황정민은 '돈의 맛'에서 재벌 할아버지를 보필하는 노비서로 등장한다.
'하녀'에서 은이에게 유일한 힘이 돼 줬던 그가 '돈의 맛'에서는 누구보다도 돈의 맛에 중독되고 찌든 하녀가 된 것이다. 극중 노비서는 할아버지(재벌 창업주)의 손과 발이 돼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상황을 엿듣고 보고한다. '하녀'와 '돈의 맛'에서 180도 달라진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은 흥미로우면서도 어쩐지 으스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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