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아닌 저력인가.
LG가 이번에도 5할 승률 기로에서 승리했다. LG는 17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와 주중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정재복의 6⅔이닝 노히트노런에 힘입어 1-0으로 신승, 시즌 16승(15패)을 거두고 다시 승률 5할 이상(51.6%)을 올렸다.
이쯤 되면 올 시즌 LG의 5할 승률 사수를 우연이라 하기도 힘들다. 17일 SK전처럼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경기 흐름으로 승리하는 게 벌써 5주가 넘게 반복되고 있다. 시즌 전만 해도 불안요소만이 가득했던 LG 전력이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감을 찾고 있는 실정이다.

4월에는 고질병이던 거포 4번 타자 부재와 불펜 불안이 해결됐다. 정성훈이 4월 한 달 동안 홈런부문 선두를 질주하며 리그 최고의 타자가 됐었고 류택현·유원상을 중심으로 한 불펜진도 좀처럼 역전패를 허용치 않았다. 현재 정성훈의 타격 페이스가 주춤하지만 이진영과 박용택이 정성훈 대신 맹타를 휘두르고 있고 마무리 투수 리즈의 대실패는 봉중근 카드의 성공으로 희석되려 한다.
17일 SK전에선 선발진 불안요소와 포수진 불안요소를 극복, 한 번 더 의미 있는 승리를 달성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LG 김기태 감독은 최대약점으로 꼽혔던 선발진에 대한 해답으로 신구조화와 내부경쟁을 내걸었다. 즉 베테랑 투수와 신예 투수들을 선발로테이션에 섞었고 1군·2군 선발투수들이 시즌 중에도 무한경쟁에 임해 언제든 한 자리를 꿰찰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지난 한 달 동안 LG 선발진은 신진세력의 호투만 보였을 뿐 베테랑의 활약은 미미했다. LG는 이승우·최성훈·임정우의 선발 등판시 6승 3패의 호성적을 남긴 반면 정재복·김광삼·이대진은 17일 경기 전까지 모두 평균자책점 4점대 이상으로 고전했다. 결과적으론 신구조화가 아닌 신구 세력의 기량차이만 강하게 인지시켰다.

반전은 일어났다. 10년차 베테랑 정재복이 17일 커리어 최고의 투구를 펼쳤다. “나이와 예전 실력은 의미 없는 프로 세계다. 때문에 마지막 선발등판이 될 수도 있다고 봤다”며 궁지에 몰린 심정에서 120% 능력을 발휘했다. 약 7년 만에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오르는 제춘모와의 매치업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난타전과 불펜 대결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 투수전이었다.
포수 불안 부분도 희망의 빛을 쐈다. 시즌 전만 해도 한 시즌 100경기 이상을 소화해본 포수가 전무, 주전포수 역할을 맡아줄 이가 없어보였다. 포수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도루저지 능력이 다들 미흡해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나 지난겨울 전지훈련에서 제외, 올 시즌 2군에서 시즌 개막을 맞이한 김태군이 해결사로 떠올랐다.
지난 5일 두산전부터 1군에 합류한 김태군은 11경기에 출장, 9번의 도루 시도 중 7번을 잡아내며 도루 저지율 77.8%를 올리고 있다. 김태군은 17일에도 박재상과 김강민의 도루를 잡아냈다. LG는 정재복이 등판할 때마다 정재복의 퀵모션 난조로 상대에게 손쉽게 2루 베이스를 허용해왔지만 이날 김태군의 2루 송구는 마치 그림처럼 완벽한 궤도로 SK 주자들의 태그아웃을 유도했다. SK측에선 다득점 경기를 예상했겠지만 도루 실패로 하나씩 꼬이면서 무득점 영봉패의 결과를 받아들여야했다.
어쩌면 앞으로 LG가 보여주는 모습은 단순한 5할 승률 사수 뿐이 아닐지 모른다. LG 김기태 감독은 6월이 팀 전력의 베스트를 갖추게 되는 시기라 강조했다. 실제로 김 감독은 올 시즌 미래를 위한 투자를 감행, 선발투수로만 등판할 것으로 보였던 임찬규를 불펜에 투입시킬 뜻을 밝혔다. 선발 로테이션이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인 만큼 필승조 유원상의 과부하를 막기 위한 최상의 카드를 꺼내든 셈이다.
6월 류택현이 돌아오고 마무리 투수 봉중근의 연투가 가능해지면 LG 불펜은 7회 이후 역전패가 없었던 4월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 리즈가 합류한 선발진 역시 주키치·리즈가 지난 시즌의 활약을 재현하고 신구조화가 성공한다면 보다 단단해질 것이다. 이병규(7번), 김태완의 내야진 합류 또한 큰 힘이 될 전망이다.
올 시즌 희대의 반전드라마를 쓰고 있는 LG의 행보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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