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으로 앞서 있던 9회 초, 롯데를 상대로 등판(대구)해 2/3이닝 동안 무려 6실점하며 프로 데뷔 이후 한 경기 최다실점을 허용한 지난 4월 24일, 오승환은 341일만의 블론 세이브를 기록함과 동시에 2011년 7월 5일 SK전(문학)부터 이어오던 연속경기 세이브 신기록도 28경기에서 멈추는 속 쓰린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2011년 54경기에 마무리로 나와 47세이브를 올리는 동안 허용한 총 실점수가 불과 4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날 오승환의 마무리 실패는 그야말로 천재지변급 블론 세이브였다고 말할 수 있다. 1점도 아닌 2점 차의 리드가 가져다 주는 오승환이라는 두터운 벽은 그간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철의 장막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다란 댐이 일거에 내려앉듯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던 그날의 악몽이 역으로 생각하면 오승환으로서는 기록의 족쇄로부터 해방된 날이기도 했다. 그간 계속되어온 연속경기 세이브 기록 때문에 세이브를 따낼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 상황에서 오승환은 쉽사리 마운드에 오를 수 없었고, 소속 팀으로서도 상당히 중요한 대목임에도 리드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제약으로 인해 오승환의 등판통고를 머뭇거려야 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었다.

실제로 기록 중단의 효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경기에 반영되었다. 5월 10일 삼성은 롯데와의 사직경기에서 2-2로 팽팽히 맞서던 연장 12회말, 오승환을 마운드에 올렸다. 패전의 위기로부터 팀을 지켜내라는 명령인 동시에 약 보름 전쯤 롯데에게 당했던 몰매의 아픈 기억도 씻어버리기 위한 목적의 등판이었다.
그날 오승환은 팀의 바람대로 1이닝을 무실점으로 버텨내며 경기를 무승부로 틀어막았다. 만일 얼마 전에 오승환의 연속경기 세이브 기록이 중단되지 않았더라면 동점 상황에서 오승환을 마운드에 올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간 철저히 세이브 상황하에서의 등판만을 고수했던 기용형태로 보아 미루어 짐작컨대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아주 오랜만에 동점 상황에서 마운드를 밟을 수 있었던 이날 오승환의 등판은 기록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마무리 투수의 연속경기 세이브 기록 인정에 관해서는 상당히 까다로운 제약조건이 따라붙어 있다. 이 기록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마무리를 위해 등판하는 투수의 기용시점은 반드시 세이브를 따낼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된 상황이라야 한다. 즉 리드를 하고 있어야 하는 기본이고, 리드를 하고 있더라도 남은 이닝에 따라 마무리 투수가 세이브를 기록할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간격의 리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상대를 무차별적으로 두들겨 이기는 대승은 마무리 투수에겐 독(?)이다.
연속경기 세이브 기록이 중단되는 사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세이브 상황에서 올라와 경기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도중에 물러나거나 최소한 동점을 허용해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는 것이 첫째이고, 세이브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 등판하는 것이 두 번째다. 롯데에 뭇매를 맞았던 4월 24일도, 동점 상태에서 등판한 5월 10일도 모두 연속경기 세이브 기록 관점에서는 중단사유에 해당된다.
현재 한국과 일본의 연속경기 세이브 기록 인정에 관한 조건은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반드시 세이브 상황에서만 등판해야 하고, 등판한 경기에서 실수 없이 세이브를 꼭 따내야 한다. 일본 프로야구의 연속경기 세이브 기록은 1998년 사사키 가즈히로(전 요코하마)가 세운 22경기가 최다 기록이다.
반면 메이저리그의 연속경기 세이브 기록 산정은 우리와는 맥을 약간 달리 한다. 물론 세이브 상황에서 올라와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면 당연히 기록이 중단되지만, 5월 10일 오승환의 경우처럼 동점 등의 세이브 조건이 아닌 상황에서 등판을 했다 하더라도 연속경기 세이브 기록은 중단되질 않는다. 2002~2004년에 세워진 에릭 가니에(LA 다저스)의 84경기 연속 세이브 기록 안에는 세이브 상황이 아닌 경우에 등판한 기록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어느 나라의 기준이 보다 합리적인 지는 좀더 고민이 필요한 사항이다.
1993년 해태의 선동렬은 18경기 연속 구원성공을 기록하고 있었다. (당시 구원투수의 구원성공 기준은 세이브뿐만 아니라 구원승을 모두 포함시켜 계산했기 때문에 지금의 연속구원 성공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던 중 5월 20일 선동렬은 쌍방울과의 전주 원정경기에서 5-5로 맞서던 9회말 무사 1루에서 등판했고, 연장 14회의 접전 끝에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기까지 무려 6이닝 동안 10개의 탈삼진을 섞어가며 2피안타 무실점으로 쌍방울 타선을 완벽히 봉쇄시켰다. 형태만 마무리였지 내용으로 보면 사실상 선발투수급의 마무리였다.
그러나 다음날 선동렬의 연속경기 구원성공은 18경기에서 중단된 것으로 판정이 내려졌다. 5월 20일 동점상황에서 등판한 것이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해석이 내려지자 연속경기 구원성공 기준이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왔는데, 그 주장의 논조에는 연승이나 연패에 관한 기록에는 무승부가 끼어들어도 연속기록이 깨진 것으로 해석하지 않고 있다라는 지적을 깔고 있었다.
당시에도 이러한 기록인정 규정에 관해 논의가 이루어졌고, 팀의 연승과 개인의 연속기록이 주는 의미가 완전 일치하지 않는 관계로 결과적으로는 다소 빡빡한 쪽의 연속경기 구원성공 인정기준을 그대로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긴 했지만, 선동열의 구원성공 불인정에 관한 부분에 있어서는 명료한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논쟁은 한 마디로 기록의 순도와 정상참작을 놓고 어느 쪽에 좀더 높은 가산점을 줄 것인지를 가리자는 것인데, 잡티 없는 연속경기 세이브 기록과 잡티가 좀 있더라도 크게 하자가 없는 연속경기 세이브 기록을 분류해서 별도의 집계를 해보는 것은 어떨는지.
5월 17일 기준으로 오승환은 순도로 따지자면 1세이브, 5월 10일의 무승부라는 잡티가 들어간 것을 없는 척 그대로 인정해주자면 5경기 연속 세이브 기록행진 중이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