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17일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퍼펙트게임이 나왔다. 1군 정규시즌이 아닌 2군 퓨처스리그서 나온 기록이긴 했지만 30년이 넘는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라는 데 의미가 있었다.
기록의 주인공은 바로 롯데 자이언츠 우완 이용훈(35). 그는 한화 이글스와의 2군 경기에 선발 등판해 9이닝동안 삼진 10개를 곁들이며 27명의 타자를 단 한명도 1루에 내보내지 않았다. 그날 경기를 발판삼아 이용훈은 지난해 SK와의 플레이오프 명단에 이름을 올린데 이어 올 시즌엔 5선발 후보로 당당하게 1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용훈이 퍼펙트를 달성하며 던졌던 111구를 모두 받아낸 선수가 있으니 바로 롯데 2군 포수 김사훈(25)이다.
지난 2년동안 1군 무대에서 활약이 거의 없었던 이용훈보다 김사훈의 이름은 더욱 낯설다. 부산고-한민대를 나온 김사훈은 176cm의 키에 83kg의 다부진 체격을 가진 포수 유망주. 그는 지난해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했고 결국 작년 10월 신고선수로 롯데 유니폼을 입게 됐다. 이용훈과 배터리로 호흡을 맞춰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것도 신고선수로 2군에 머물 때 일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롯데와 정식선수 계약을 체결한 김사훈은 가능성을 인정받아 전지훈련 명단에 포함, 1군의 꿈을 키워오다 윤여운이 2군애 내려가며 1군 승격의 기회를 잡았다.

진정한 에이스는 단순히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것 뿐만 아니라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 구해내야 한다. 롯데는 앞선 4경기서 1,2,3,4선발이 차례로 무너지며 4연패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제 5선발인 이용훈에 기대를 걸어야 할 상황. 이용훈은 18일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6⅔이닝동안 단 2실점만 하며 팀의 5-4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승리로 이용훈은 시즌 5승째를 수확하며 다승부문 공동선두로 뛰어올랐고 평균자책점은 2.45까지 낮췄다.
그리고 김사훈 역시 이날 프로데뷔 후 처음으로 1군 경기에 선발 마스크를 썼다. 주전포수 강민호의 체력을 관리해주기 위한 결정. 김사훈은 안정적인 리드와 강한 송구, 그리고 적절한 타격까지 곁들이며 백업포수 경쟁에서 한 발 앞서가는 활약을 펼쳤다. 1-1로 맞선 2회 2사 2루서 김사훈은 앤서니의 6구를 가볍게 잡아당겨 좌익수 앞에 갖다놓는 역전 적시타를 기록했다.
또한 앞선 2회 수비에선 1사 1루서 1루주자 나지완을 재빠른 피치아웃으로 잡아내더니 3회 도루를 시도하던 이용규를 정확한 송구로 막아섰다. 2루수 박준서가 갖다대고 있는 글러브에 정확하게 공이 도착해 자동 태그아웃 될 정도로 훌륭한 송구였다. 제 몫을 다 한 김사훈은 6회 대타 강민호로 교체되며 성공적인 선발 데뷔전을 마쳤다. 비록 6이닝만 마스크를 썼지만 김사훈은 이날 2타수 1안타 1타점에 도루저지 2개를 기록했다.
올 시즌 전까지 두 선수에 거는 기대감은 사실 그리 크지 않았다. 이용훈은 베테랑으로 5선발 후보로 거론되던 게 전부였고 김사훈은 백업포수 경쟁에서도 이동훈-윤여운에 밀려 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해 함께 퍼펙트게임을 만들었던 배터리는 팀 연패를 끊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때문인지 경기가 끝난 뒤 이용훈은 김사훈의 리드를 여러번 강조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오늘 처음 선발 출장한 김사훈이 과감한 볼배합으로 공격적인 피칭 유도해서 편하게 던질 수 있었다"며 지난해 함께 호흡을 맞췄던 기억을 되새겼다. 김사훈 역시 경기 후 "이용훈 선배님과 호흡이 잘 맞는다"고 했다. 이쯤 되면 주전포수 강민호의 체력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이용훈이 등판하는 날 김사훈을 전담 배터리로 기용하는 걸 고려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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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민경훈 기자,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