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뚝이 검객' 최병철(31, 화성시청, 세계랭킹 4위)에게 세 번의 실패는 없다.
지난 18일 2012 SK텔레콤 국제그랑프리 펜싱 남자 플뢰레 64강전 준비에 한창인 최병철을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서 만났다.
지금은 세계 무대를 호령하고 있는 한국 남자 플뢰레의 간판 스타 최병철이지만 그가 이 자리에 올라오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23세에 청운의 꿈을 안고 첫 출전한 2004 아테네 올림픽서 좌절을 맛 본 최병철은 전성기이던 2008 베이징 올림픽서도 연거푸 고배를 마시며 쓰라린 아픔을 경험했다.
특히 베이징의 아픈 기억은 아직도 그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최병철은 당시 은메달을 따낸 일본 선수와 16강에서 만나 한 점 차의 석패를 당했다.
"1점 차로 졌기 때문에 정말 아쉬웠다"며 당시를 회상한 최병철은 "그 때는 지금보다 체력도 좋았고 모든 면에서 내 전성기였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 시련 이후 말할 수 없이 더 큰 사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동생 사이로 선수 시절을 함께 보낸 뒤 베이징서 그를 지도했던 코치가 자살한 것. 선수 생활까지 그만 둘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건이자 큰 아픔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발목 부상을 당한 그는 수술을 감행하며 1년 동안 칼을 내려 놓았다.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최병철은 심기일전해 1년 간 구슬땀을 흘렸고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서 플뢰레 개인전 금메달과 단체전 동메달을 목에 걸며 오뚝이처럼 꿋꿋하게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런던 올림픽 출전을 확정지으며 3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는 행운의 주인공이 됐다.
산전수전을 겪은 그의 칼끝은 이제 런던을 향해 있다. 최병철의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런던 올림픽에 단체전 출전이 좌절됨에 따라 베이징에 이어 런던서도 남자 플뢰레 선수 중 유일하게 칼을 휘두르게 된 것.
최병철은 "단체전 출전 좌절이 몇 달 전에 결정났다. 혼자 나가서 미안하다"며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이다. 후배들을 대신해서 나가는 만큼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경기에 임하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금메달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다. 세계랭킹 1위부터 3위를 독식하고 있는 펜싱 강국 이탈리아 선수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 더욱이 1위 안드레아 카사라(193cm) 2위 안드레아 발디니(175cm) 3위 조르조 아볼라(178cm)는 모두 최병철(173cm)보다 신체조건이 우수해 금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서는 이들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부상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그는 "발목이 완벽하지는 않다. 허리, 손가락, 무릎 등 아픈 곳이 많아 재활과 훈련을 병행하고 있다"며 잔부상으로 고생하고 있음을 밝혔다.
최병철은 "나는 풋워크를 통해 상대를 공략할 타이밍을 잡는다면 이탈리아 선수들은 5살 때부터 칼을 잡았던 터라 손 동작이 정말 좋다"고 극과 극의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고 있음을 설명했다.
런던서 금메달을 확정짓는 순간 시드니 올림픽 때 김영호 로러스 펜싱클럽 감독이 선보였던 금메달 세리머니와 똑같이 마스크를 벗고 무릎을 꿇겠다는 최병철.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뚝이처럼 일어났던 그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12년 동안 끊겨버린 한국 남자 펜싱의 금맥을 런던에서 시원하게 터트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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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철(왼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