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검객' 전희숙, '女 플레뢰에 나도 있다'
OSEN 이균재 기자
발행 2012.05.21 07: 30

전희숙(28, 서울시청, 세계랭킹 17위)이 독기를 품었다.
2012 런던 올림픽에 출전할 한국 여자 플뢰레 선수는 총 3명. 이중 일찌감치 한 자리를 예약한 한국 펜싱의 간판 스타 남현희(31, 성남시청, 세계랭킹 3위) 외에 나머지 2명의 자리는 공석이었다.
하지만 전희숙이 지난 20일 끝난 2012 SK텔레콤 국제그랑프리 펜싱 여자 플뢰레 개인전서 16강에 올라 준우승을 차지한 남현희를 제외하고 한국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며 런던행 티켓을 잡았다.

▲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전희숙-남현희
전희숙은 육상 선수로 운동을 시작해 중2 때 처음으로 칼을 잡았다. 전희숙의 능력을 알아본 건 현재 여자 플뢰레 대표팀을 지도하고 있는 최명진 코치다. 당시 신수중의 펜싱부 코치였던 최 코치는 단번에 전희숙의 남다른 능력을 알아봤다.
그렇게 우연찮게 시작된 그녀의 펜싱 인생에서 가슴에 태극마크를 처음 달았던 건 2004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배들과 함께 훈련하면서부터다. 이후 전희숙은 2006 도하 아시안게임 여자 플뢰레 단체전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여자 플뢰레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각종 국제대회서 메달을 획득하며 2008-09 시즌 세계 4위에 오르는 등 한국 여자 플뢰레를 대표하는 선수를 넘어 세계 무대를 두드리는 선수로 거듭난 전희숙. 하지만 그 때도 국내 1인자의 자리와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은 항상 남현희의 몫이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서 남현희가 여자 펜싱 역사상 첫 은메달을 획득하는 장면을 TV로 지켜봐야 했고, 심기일전해 출전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개인전 준결승서 남현희를 만나 14-15로 1점 차 석패를 당하며 또 한 번의 시련을 겪는다.
하지만 전희숙은 오히려 남현희의 빛에 가려졌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세계적인 선수와 가까이서 부딪혀 보고 배우면서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희숙은 "언니는 기술이 좋기 때문에 후배들을 가르쳐주는 걸 좋아한다. 언니에게 다양한 기술을 많이 배웠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한 가지 기술을 사용하더라도 힘있게 상대를 몰아붙이며 선이 굵은 펜싱을 추구하는 전희숙과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다양한 기술로 상대를 요리하는 남현희. 이 둘은 플레이 스타일에서도 극과 극을 이루는 정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다
과거에 비하면 몸 상태가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지금도 허리와 무릎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그녀다. "허리와 무릎이 많이 아파 치료중이다. 오전에는 치료를 하고 오후에는 훈련을 한다"는 전희숙은 "과거에 인대가 한 번 끊어져 항상 테이핑을 하고 경기에 나선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어 "6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악성빈혈'로 20분 이상 운동을 못했고, 10년 전에는 발에 뼈가 튀어 나와 운동을 하는 데 고통이 있어 뼈를 깎는 수술을 감행했다"는 그녀는 "그래도 지금은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며 웃음을 지었다.
펜싱을 그만두려고 생각했을 만큼 심리적으로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다. "2년 전 소속 팀과 마찰이 있어 운동을 포기하려고 했고 집에서 가출까지 했다"는 전희숙은 "어머니가 내가 돌아오길 기다렸고 매일같이 기도해주신 덕분에 바른 길로 돌아 올 수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리며 어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 올림픽, 그 요원한 꿈을 이루다
지금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가장 큰 소원은 딸의 올림픽 출전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2008년 눈을 감았다. 가슴에 응어리가 맺혔다. 이제 전희숙에게 올림픽 출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드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전희숙은 "올림픽에 나가게 되면 처음이라 긴장하고 떨릴 것 같다"며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집중해서 좋은 경기를 하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어 "주위 사람들이 메달을 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나라도 우리를 까다롭게 여기기 때문에 메달을 딸 수 있을 것 같다"며 "단체전뿐만 아니라 개인전서도 메달을 따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메달 획득이 확정되는 순간 엄청 많이 울 것 같다"는 전희숙은 "개인전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더욱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전희숙은 세계랭킹 1, 2, 4위를 차지하고 있는 발렌티나 베잘리(38)-엘리사 디 프란치스카(30)-아리아나 에리고(24, 이상 이탈리아) 외에도 "프랑스 선수들의 실력이 많이 올라왔다. 다들 어려워 하는 상대다"며 코리네 마이트레진(세계 5위)과 아스트리드 구얏트(세계 9위)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나타냈다.
전희숙은 "나는 힘이 좋기 때문에 힘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는 '파워 펜싱'을 구사한다"며 "단순한 공격을 힘있고 빠르게 구사하는 것이 내 강점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기고 있다가도 체력이 부족해 마지막에 추격을 당해 패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그녀는 "필라테스와 런닝을 통해 체력을 기르고 있다"고 단점을 보완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토록 꿈꾸던 올림픽 출전을 확정하며 아버지와 못다 이룬 약속을 지켰다. 이제 전희숙의 칼끝은 런던 올림픽을 향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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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공원=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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