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방극장에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주인공들이 대활약을 펼치고 있다. 타임슬립(Time slip) 소재의 드라마가 '대세'가 된 것. 타임슬립은 '시간이 미끄러진다'는 의미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시간 여행을 뜻한다.
현재 방송 중인 SBS 수목드라마 '옥탑방 왕세자'와 tvN 수목드라마 '인현왕후의 남자'가 그 대표적 예다. 뿐만 아니라 오는 26일 첫 방송인 MBC 주말드라마 '타임슬립 닥터진'은 제목에서부터 타임슬립 소재를 내걸고 있으며, 오는 8월 방송될 SBS 월화드라마 '신의'도 타임슬립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드라마 속 '시간 여행'이라는 판타지적 소재가 인기를 누리며 안방극장 속 하나의 '열풍'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사고뭉치들의 좌충우돌 현대 적응기 '폭소 만발'
"이리 오너라"를 외치며 말을 타고 다니던 조선시대 높으신 분(?)들이 원인도 모른 채 현세로 '쿵' 떨어졌다. 조선시대에서 시간을 건너온 주인공들은 하필이면 도심 한복판에 떨어지고, 눈앞에 펼쳐진 듣도 보도 못한 광경을 파악하기도 전에 높은 빌딩과 도로를 쌩쌩 달리는 차들의 모습에 기겁하고 만다.
'옥탑방 왕세자'의 왕세자 이각(박유천 분)과 충신 3인방 송만보(이민호 분), 도치산(최우식 분), 우용술(정석원 분)은 차들의 경적 소리에 칼을 꺼내들기도 하고, 제 집인 양 창덕궁에 들어서려 굳게 닫힌 돈화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수상한 자들'로 오인 받아 경찰에 붙잡히기도 한다.
'인현왕후의 남자'의 김붕도(지현우 분)는 조선시대에서는 명석한 머리와 빠른 상황 판단력을 선비지만, 현대에서는 생전 처음 접하는 문물들을 다룰 줄 몰라 갸우뚱거리는 어리바리한 '반전' 모습을 보여준다.
세상이 송두리째 흔들린 드라마 주인공들로서는 갑자기 맞닥뜨린 '2012년'이 헤쳐 나가기 막막한 괴물 같겠지만 시청자들은 그들이 현실에 맞서 싸우다가, 적응하다가를 반복하며 펼치는 에피소드들에 웃음보가 터지고 만다.
# 시공간의 제약이 가져다주는 애절함 '극대화'
현대에 맨몸으로 내던져진 위험천만한 주인공들. 하지만 타임슬립 드라마에서는 곧 그들에게 수호천사 같은 씩씩한 여주인공들이 나타난다. 타임슬립 소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재인 '로맨틱 코미디'를 완성시키는 존재가 등장하는 것이다.
여주인공들은 현대에 대한 적응력이 없는 주인공들이 쉴 새 없이 터뜨리는 사고를 수습하고 그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치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티격태격하던 남녀 주인공은 극의 진행과 함께 '미운 정'보다 더 깊이 쌓여버린 '고운 정'으로 알콩달콩한 사랑을 펼치기 시작한다.
특히 타임슬립이라는 소재는 남녀 주인공의 사랑에 큰 장벽이 되며 애절함을 극대화시키는 장치가 된다.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는 '시간적 장벽'은 일반적으로 드라마 속 남녀 주인공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부모의 반대나 계급의 차이 등과는 차원이 다른 해결 불가능한 장벽이다. 현실적인 범위를 벗어난 판타지적 장애물 덕분에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더욱 애틋하고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이다.
# 무거운 사명을 띠고 온 그들 '긴장감 증폭'
타임슬립 드라마의 주인공들과 현대와의 첫 만남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쿵' 떨어진 것이지만, 그들이 하나같이 '시간 여행'을 오게 된 뚜렷한 이유가 있다.
'옥탑방 왕세자'의 왕세자 이각은 세자빈의 의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풀기 위해 3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신하들과 함께 21세기 서울로 날아오게 됐으며, '인현왕후의 남자'에서 김붕도는 자신이 충성하는 인현왕후의 복위를 위해 시대를 오가며 고군분투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단순히 코믹하기만한 가벼움, 진부한 러브 스토리의 틀을 깨며 극의 흐름에 무게 중심을 잡는다. 또한 차츰 밝혀지는 미션 해결의 실마리가 극중 인물들과 두루 연결되며 극의 전반적인 주도권을 잡고 긴장감을 입히기도 한다.
타임슬립 드라마 주인공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돌발 행동으로 폭소를 자아내기도 하고, 온몸으로 시간적 장벽과 부딪히며 호된 신고식을 치르기도 한다. 하나의 드라마에서 팔색조 매력을 펼칠 수 있게 만드는 타임슬립 소재가 바로 브라운관으로 시청자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공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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