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진해졌다. 영화 '후궁'으로 30대를 맞이한 배우 김동욱은 한살한살 나이를 먹듯 연기의 농도를 한층한층 더해갔다.
그 자신도 밝혔듯 김동욱에겐 '처음'이 많다. 영화 '발레교습소'는 그의 첫 데뷔작이고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은 그의 첫 드라마다. 영화 '국가대표'는 그의 첫 흥행작이고 '후궁'은 그가 30대에 처음으로 만나게 된 작품이다.
그는 이러한 첫 작품들을 거쳐오면서 연기 농도에 '진함'을 더했다. '커피프린스'에서 진하림 역을 맡아 귀여운 매력을 발산했다면 '국가대표'에서는 최흥철 역을 맡아 개구쟁이, 그리고 독특한 개성의 매력을 뽐냈다. 그리고 이번 '후궁'은 그가 쌓아온 농도의 절정을 찍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극중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욕망과 집착에 휩싸인 성원대군 역을 맡아 수많은 감정들을 스크린안에 담아냈기 때문.

지난 2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OSEN과 만난 김동욱은 이러한 성원대군의 사랑을 '후궁'을 연출한 김대승 감독의 말을 빌어 '고슴도치의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나를 사랑해줘요, 안아줘요'하며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는 고슴도치는 자신의 가시가 그 사람을 찌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성원대군의 사랑이 그것과 같다는 것.
"성원대군은 너무나 여리고 순수하고 어떻게 보면 가여운 인간인 것 같습니다. 왕이 되기 전 대군이었을때 그는 나이도 어렸지만 굉장히 여리고 대비에 의해 억압돼있었고 소극적인 유약한 그런 인물이었죠. 그런 사람이 화연을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을 하게 된 거에요. 그 여인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보다는 너무나 순수한 사랑인거죠. 그랬던 사람이 화연이 궁에 들어가게 되고 이후 왕이 되면서 자신의 위치가 변하고 상황이 달라지자 사랑이 절실해지다못해 집착이 됐습니다. 처음엔 바라보는 사랑으로 만족했다면 점차 가지고 싶은 사랑으로 바뀌어 버린 거죠. 그는 자신의 사랑은 너무나 순수한데 그게 다른 사람에게는 고통인지 몰라요. 감독님이 말씀하셨다시피 그의 사랑은 고슴도치 같은 사랑입니다. 고슴도치는 그저 사랑받고 싶어 안기는데 안는 사람은 가시 때문에 상처가 되죠. 그러데 고슴도치는 그걸 몰라요. 그래서 참 안타깝고 가여운 인간이에요."
워낙에 수많은 감정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보니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도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을터. 김동욱 자신도 영화를 촬영하면서 감정적으로 많이 지쳤다고 전했다. 그는 이러한 힘듦을 김대승 감독과 이야기를 하며 덜었다고. 매번 촬영이 끝날 때마다 김대승 감독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정말 많이 지쳤죠. 특히 나오는 모든 장면들이 감정적으로 진하고, 강한 갈등들인데 이 모든 것들이 똑같지 않게 보이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세게 나가면 관객들이 감정의 흐름을 같이 쫓아가줄 수 있을까 생각을 했어요. 너무 감정선을 세게 나가서 관객들이 한발짝 물러서는 상태를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감정들을 조절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고 그런 작업들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했어요. 감독님께서도 저에게 '이렇게 찍었고 이런 장면이 남았고 이런 흐름 속에 여기에 해당하는 장면인데 성원대군의 감정이 어떨지, 폭이 농도가 어느 정도 일지 고민해보자' 이렇게 매 촬영 끝날 때마다 얘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잘 생각하고 배분하지 않으면 모든 장면들이 하나의 장면처럼 보일 수 있으니 말이에요."

이처럼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토로한 김동욱은 그렇다면 왜 '후궁'을 택했을까.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후궁'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너무나 재밌었다고. 게다가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심지어 내시들까지 모두 멋있었다고 전하며 미소를 지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전혀 1초의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너무 재밌었거든요. 대본이, 작품이 재밌었고 역할도 매력적이었고요. 대본을 읽으면서 '나 이거 해야돼, 해야돼'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캐릭터들도 다 매력적이에요. 저희 영화에 나오는 내시들도 다 멋있죠(웃음)."
김동욱의 '후궁' 선택이 궁금한 또 하나의 이유는 영화 속 등장하는 농도 짙은 정사신 때문이다. 김동욱은 자신의 연기 인생 최초로 과감한 노출을 시도했다. 이러한 노출과 정사신이 작품 선택의 부담으로 작용했을수도 있었을테니 말이다.
"정사신은 '후궁'을 선택하고 난 뒤에 촬영 준비를 하면서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 와닿았습니다. 단순하게 벗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고 감독님하고 얘기를 하면 할 수록 정사신에 들어가있는 감정이 어려워서 부담감과 업박이 오더라고요. 노출은 일부러 식스팩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성원대군이 남성적인 인물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촬영 들어가기 전에 다이어트는 좀 했어요. 그런데 이게 다이어트를 하니까 촬영 후반부 갈수록 체력적으로 힘들더라고요. 체력적으로 힘들면 에너지가 안나오니까 그래서 중간엔 포기를 하고 막 먹었죠(웃음)."
'후궁'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보면 알겠지만 '후궁'은 에로틱 궁중사극이다. 현재 국내 극장가에 불어닥친 19금 열풍에 어찌보면 정점을 찍고 있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정사신의 농도는 짙다. 그러나 막상 영화의 뚜껑을 열어보면 정사신보다는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감정에 더 초점이 가기 마련이다. 주연 배우로서 영화가 이런 감정들 보다는 노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저희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영화를 못 보신 분들이 노출에 포커스를 맞춰서 그렇게 이야기가 되는 것이니까요. 많이 안타까웠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막상 영화를 보시면 저희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공감해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정사신을 보시고 '보여주기 위한 정사신이 아니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노출과 정사신이구나'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김동욱이 '후궁'에 캐스팅 됐을 당시 '미스캐스팅'이라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동안의 이미지와 귀여운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김동욱이 근엄한 왕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대해 김동욱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자신도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며 그래서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왕과는 다른 왕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저 역시도 이런 무거운 내용을 다룬 영화에서 왕 역할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에 고민을 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그동안의 왕의 모습이고 싶지 않았고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왕으로 생각했어요. 절대자, 권력자의 강한 왕이 아니라 다 틀어보고 싶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는데 정작 내껀 아무것도 없는, 가장 높은 위치지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더 가엾고 연약한 왕을 말이에요"
성원대군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으로 인해 결국은 변하게 되는 인물이다. 김동욱도 여인때문에 변했던 적이 있을까. 문득 김동욱의 사랑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아무래도 영화가 진한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는 한 때 열정적인 사랑을 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 받기 위해 도망가는 것 같다며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첫사랑 때 너무 좋아하고 사랑해서 '내가 집착하는 것 같다' 느낄 정도의 경험은 있습니다. 내가 왜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너무 힘드니까 싫어하고 싶고 안보고 싶은데 집착하게 되는, 너무 좋아했던 적이 있었죠. 지금은 그때처럼 집착하는 열정 넘치는 사랑을 해 보고 싶어요. 지금은 상처를 덜 받으려고 도망가려 하거든요. 그때는 그저 좋아하니까 상처마저도 감수했는데 말이죠. 그게 때가 많이 묻었다는 것 같아요."
결국은 사랑이 집착으로 변했지만 성원대군은 어찌 보면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지고지순한 로맨티스트일수도 있겠다. '사랑'을 대하는 김동욱의 태도는 어떨까. 그는 최근 출연했던 SBS 예능프로그램 '고쇼'에 나왔던 것처럼 감정에 솔직하다고 밝혔다.
"저는 감정에 솔직한 편이고 이벤트 같은 자상함은 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리고 애교는 저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받아들이는 분은 어떨지 모르죠(웃음). 사랑하는 사이끼리 머리 쓰는건 다 보이지 않나요. 사랑하는 사이에 있어서 그런 것들(감정들)을 감출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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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