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수목드라마 ‘적도의 남자’(이하 적도)가 지난 24일 이준혁의 자살과 엄태웅-이보영 커플의 결합이라는 상반된 최후를 보여주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매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으로 화제를 불러 모으며 ‘심장이 쫄깃해 지는 드라마’로 명성을 이어온 ‘적도’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우선 ‘적도’는 우리에게 배우 엄태웅의 존재감을 다시금 일깨워줬다. ‘적도’에서 시각장애인 선우 역을 맡은 엄태웅의 연기는 그야말로 눈부셨다. 이미 드라마 ‘부활’과 ‘마왕’으로 선굵은 연기를 선보이며 ‘엄포스’로 불렸던 그였기에 ‘적도’의 연기 호평은 어느 정도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그 호평세례 정도가 가히 심상치 않았다.

엄태웅은 의문사로 아버지를 잃고, 그 죽음에 연관돼 있었던 친구의 배신으로 눈이 멀게 된 남자, 선우를 연기했다. 극 후반 핏빛 복수의 서막으면서 선우는 시력을 회복했지만 극 중반까지도 선우는 앞을 볼 수 없었다.
시청자들은 엄태웅의 시각장애인 눈빛 연기를 ‘동공연기’라 칭하며 열광했다. 초점 없이 자꾸만 굴러가는 눈동자로 실감나는 시각장애인 연기를 펼치면서도, 변함없이 카리스마 넘치는 에너지를 뿜어내는 엄태웅을 향해 시청자들은 ‘연기에 신들렸다’는 극찬을 쏟아냈다. 시각장애인 연기는 엄태웅 전과 후로 나뉜다’는 평을 이끌어냈을 정도다.
이처럼 엄태웅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그 에너지에 걸맞는 파워로 극의 또 다른 축을 담당했던 배우 이준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준혁은 극중에서 자신을 점점 조여오는 선우(엄태웅 분)와 수미(임정은 분) 때문에 폭발하는 이른바 ‘멘붕 연기’로 엄태웅의 ‘동공 연기’ 못지 않은 화제를 불러 모았다.
절친한 친구를 뒤에서 치고 벼랑으로 굴리고서도 자신의 지위를 잃을까 그 사실을 부인하고 오히려 “그 때 확실히 죽였어야 했다”는 악랄한 말을 일삼는 이준혁에게 시청자들은 오히려 ‘꽃개(꽃같은 객기)’, ‘야누스 리’, ‘장일코패스’ 등의 별명을 붙여가며 그의 ‘멘붕 연기’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준혁의 연기에는 엄태웅에 비적할만한 파워가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두 주인공은 극의 밸런스를 이루며 손에 땀을 쥐는 대결구도를 형성해 시청자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배우 이준혁의 재발견이었다.

또 ‘적도’는 시청률 꼴찌로 출발했더라도 작품성만 좋으면 얼마든지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불러 모을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다시금 각인시켰다. 실제로 ‘적도’는 경쟁작인 SBS ‘옥탑방 왕세자’(이하 옥세자)와 MBC ‘더킹 투하츠’(이하 더킹)의 위세에 눌려 방송 첫 주 시청률 꼴찌로 출발했지만 중반 이후 시청률 1위에 올랐다.
‘적도’는 드라마 ‘태양의 여자’를 집필한 김인영 작가가 선보인 정통 멜로다. 가벼운 ‘로코’(로맨틱 코미디) 드라마가 대세로 떠오른 요즘 우정과 배신, 복수와 성공, 엇갈린 사랑 등을 총집합시킨 정통멜로 ‘적도’는 제작 당시 너무 올드하지 않냐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적도’는 정통 멜로에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 두 남자의 엇갈린 운명 등의 진부한 요소들을 탄탄한 대본과 배우들의 연기력,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의 잘 맞아 떨어진 삼박자로 극복해냈다. 시청자들은 ‘적도’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엇갈린 사랑에서 비롯된 갈등과 배신에 분노하고, 끝내는 용서라는 굵직한 주제에 공감하게 되면서 ‘적도는 역시 마지막까지 달랐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로코’의 홍수 속에서 ‘정통멜로’의 부활 신호탄을 쏘아올린 ‘적도’의 성공이 더욱 값지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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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적도의 남자’ 방송 캡처, 아래 K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