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급하다 보니 공이 오기도 전에 발은 이미 1루를 향해 스타트를 끊고있다. 이는 기습번트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한 발이라도 1루 도착 시간을 줄여보기 위해 빠른 주력을 가지고 있는 왼손 타자들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공격형태인데, 이러한 시도가 뜻하지 않았던 부작용을 불러오는 상황이 지난 5월 22일 KIA와 한화가 맞붙은 광주구장 경기에서 또 한번 일어났다.
그날 한화의 2번타자로 나선 양성우는 서재응(KIA)이 던진 초구에 기습번트를 시도하고 1루를 향해 달려나가다 번트타구가 자신 앞에서 바운드되며 방망이에 재차 맞는 바람에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하고 주심으로부터 아웃을 선언 당해야 했다. 이후 한대화 감독의 어필이 잠깐 뒤따랐지만 느린 화면은 양성우가 완전히 규칙적으로 아웃이 되는 상황임을 재차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야구규칙 (h)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있다. ‘타자가 치거나 번트한 페어타구가 페어지역에서 방망이에 다시 닿았을 경우, 타자는 아웃이 된다’ 라는 문구가 바로 그것이다. (파울지역에서 맞았다면 그냥 파울볼이다)

쉽게 풀어, 타구가 페어지역 내에서 방망이에 두 번 닿게 되면 타자가 아웃이 된다라는 말인데, 타자가 고의로 저지른 행동이 아님에도 타자를 아웃시키는 이유는 일종의 수비방해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정서가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처음 양성우에 아웃선언이 내려졌을 당시, 바운드된 타구가 두 번째로 방망이에 닿는 과정에서 방망이를 잡고 있던 손에 닿아 ‘야수에게 닿지 않은 페어볼이 타자주자에게 닿았을 경우 타자를 아웃으로 한다’라는 (g)항의 적용을 받은 것이 아닌가 보였지만, 경기종료 후 확인결과 앞서 말한 (h)항에 의한 아웃이었음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 공통적으로 타자에 규칙적으로 아웃이 선언되는 (h)항과 (g)항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두 항은 사실 거의 일맥상통하는 규칙이다. 타구가 페어지역에서 타자의 몸에 닿은 것과 타자가 쥐고 있는 방망이에 닿은 것은 동급의 취급을 받는다. 타자의 손에서 아직 떠나지 않은 방망이는 타자주자 신체의 일부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려나가는 과정에서 페어의 타구가 몸에 닿았건, 들고 있던 방망이에 닿았건 모두가 같은 결과로 귀결된다. 그러나 야구기록적으로 두 상황은 확연히 구별되는 별개의 사항이다. 타구가타자의 몸에 닿아 아웃이 되는 (g)항은 ‘x-2’로 기록되지만, 방망이에 닿아 아웃이 되는 (h)항은 ‘2T’로 기록된다. 여기에서 숫자 ‘2’는 포수의 수비위치 번호를 뜻한다. 가령 타자주자의 몸이나 방망이에 타구가 닿은 지점이 포수가 아닌 1루수 부근이었다면 숫자는 ‘2’에서 ‘3’으로 바뀌게 된다.
조금이라도 빨리 달려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타격이 완료되기도 전에 몸을 이동시켜보지만, 때에 맞춰 빠른 볼이 아닌 느린 변화구라도 들어오게 되면 본의 아니게 발은 이미 타자석을 벗어나 있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를 찾아볼 필요도 없이 (a)항에 의해 타자는 아웃이 된다.
‘타자가 한 발 또는 양 발을 완전히 타자석 밖에 두고 타격을 했을 경우, 타자는 반칙행위로 아웃이 된다’는 조항이 적용되는 것이다. 지난 4월 7일 넥센 서건창이 잠실 두산전에서 이동간 기습번트를 시도하다 발이 타자석 밖으로 나간 상태에서 번트를 댄 것으로 인정되어 반칙행위로 아웃이 된 실제 예가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기록법은 ‘IP2’가 된다. IP는 ‘Illegally Play’의 약자이며 숫자 ‘2’는 역시 포수 부근에서 반칙행위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타구가 방망이에 두 번 닿아 아웃된 사례가 또 한번 역사에 남아 있는데 2007년 LG 박경수에 의해서 기록되었던 일명 ‘자치기(?) 사건’이다. 박경수는 SK와의 문학경기에서 1회초 1루주자(이대형)을 2루로 진루시키기 위해 보내기 번트를 시도하다 번트타구가 그만 공중에 떠버리자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얼떨결에 들고 있던 배트로 타구를 한번 더 건드리는 일을 자행(?)하다 아웃되고 말았던 기억이다.(기록표기는 2T)
당시에는 (c)항의 포수 수비방해 규정을 적용 받아 타자 박경수만 아웃되고 주자는 1루로 되돌려 보내는 것으로 조치되었지만, 완전 고의적인 수비방해로 판정이 내려질 경우에는 방해 당사자인 타자주자 자신은 물론 루상의 주자까지 함께 더블아웃 처리될 수도 있었던 아주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양성우의 타격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