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하다. 너무 불운하다. 125개를 던져도 삼진 10개를 잡아도 류현진에게 승리는 허락되지 않았다.
류현진은 25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2012 팔도 프로야구' 넥센과의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 7이닝 동안 125개 공을 던지며 6피안타 2볼넷 10탈삼진 2실점 역투를 펼쳤다. 그러나 9회말 마무리 데니 바티스타가 2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한 채 블론세이브를 범하며 힘겹게 만들어진 류현진의 승리 조건이 허무하게 날아갔다. 팀은 연장 접전 끝에 5-4로 이겼지만 류현진에게는 너무도 지독한 불운이다.
▲ 수비 도움을 받지 못하다

1회부터 4회까지 류현진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1회 1번타자 김민우를 루킹 삼진으로 잡은 류현진은 2회 박병호-강정호-오윤에 이어 3회 지석훈-허도환까지 5타자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서건창에게 첫 안타를 맞았지만 김민우를 헛스윙 삼진으로 요리했다. 4회에도 이택근-박병호를 삼진 잡는 등 4회까지 64개 공으로 삼진 9개를 솎아냈다.
그러나 5회가 문제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실수가 나왔다. 첫 타자 강정호를 평범한 유격수 팝플라이로 유도했지만 유격수 하주석이 타구 방향을 잃었다. 좌익수 최진행이 뒤늦게 따라왔지만 그 누구의 글러브에도 닿지 않은 타구는 좌중간 2루타로 둔갑됐다. 이후 지석훈에게 우중간 적시타를 맞고 선취점을 줬다. 이는 류현진의 자책점이 됐다.
6회에는 1사 2루에서 박병호에게 중전 적시타를 맞는 과정에서 수비진의 중계플레이가 무리하게 홈 승부를 노리다 타자 주자 박병호의 2루 진루를 허용하고 말았다. 다시 득점권 위기에 몰린 류현진은 다음 타자들과 신중한 승부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6회 류현진은 24개의 공을 던지며 힘을 빼야 했다. 작은 플레이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한화 수비가 보여줬다.
▲ 불펜 도움을 받지 못하다
7회까지 류현진은 무려 125개 공을 던지며 넥센 타자들을 제압했다. 지난달 18일 대전 LG전 126구 이후 두 번째 많은 투구수. 1-2로 뒤진 상황이었지만 한화 타선은 8회초 마지막 순간 힘을 냈다. 오재필-장성호의 연속 안타와 김태균의 희생플라이 그리고 최진행의 투런 홈런으로 4-2 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패전 위기에서 승리 조건 갖춘 류현진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류현진의 미소는 오래 가지 않았다. 8회부터 구원등판한 마무리 데니 바티스타가 9회말 2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지석훈-강병식을 연속 볼넷으로 내보낸 뒤 서건창에 우전 적시타를 맞고 오재일에게 희생플라이를 허용했다. 4-4 동점. 믿었던 마무리 바티스타가 어이없는 제구난 속에 에이스의 승리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시즌 두 번째 블론세이브.
이날 류현진은 125개의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85개, 볼 40개. 최고 151km 직구(56개) 다음으로 많은 커브(33개)를 던졌다. 최저 100km 최고 123km 커브로 완급조절하며 상대 타자 타이밍을 빼앗고 스스로 힘을 안배하며 125개까지 던졌다. 여기에 체인지업(31개)까지 스스로 마운드에서 오래 버텨야 함을 알기에 커브와 체인지업의 활용도를 높이며 체력을 안배했다. 7회까지 125개를 던지며 팀 승리의 조건을 만들었으니 에이스의 역할은 다했다. 그에게 없는 건 오직 단 하나 선발승 뿐이었다.
하지만 연장 접전 끝에 팀이 5-4로 승리하며 6연패를 끊자 류현진의 얼굴에도 다시 미소가 번졌다. 그는 "내가 던진 경기에서 연패를 끊어 다행"이라며 "(하)주석이 실책은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던졌다"며 실수로 기죽을지도 모를 어린 후배를 감싸안았다. 이날 승리로 한화는 류현진이 선발등판한 9경기에서 4승5패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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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