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선-박경두, 에페 사상 첫 올림픽 金 정조준
OSEN 이균재 기자
발행 2012.05.26 08: 24

런던 올림픽 금메달을 향한 84년생 동갑내기 선후배의 칼끝이 예사롭지 않다.
서울 방이동 한국체육대학교의 체육과학관에 위치한 펜싱 경기장. 지난 25일 이곳에는 쩌렁쩌렁 울리는 기합 소리와 함께 굵은 땀방울이 연신 코트 위를 적셨다. 오는 7월 2012 런던 올림픽에 출전할 한국 남자 펜싱 에페의 '간판' 정진선(화성시청, 세계랭킹 15위)과 박경두(익산시청, 세계랭킹 5위)의 이야기다.
두 선수는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1월생인 정진선과 8월생인 박경두는 친구가 아닌 선후배 사이다. 이들은 한국 에페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꿈꾸며 런던행 비행기에 오르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 '찰떡궁합' 스승과 만남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1992 바르셀로나, 1996 애틀랜타, 2000년 시드니 올림픽까지 한국 남자 에페 대표로서 4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가 있다. 현재 남자 에페 대표팀을 지도하고 있는 이상기(46) 코치다.
16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 펜싱을 세계에 빛낸던 그에게도 쓰라린 기억이 있다. 1988년부터 1996년까지 3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았지만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연이어 고배를 마신 것. 하지만 '절치부심'하며 4년을 기다린 그는 34살이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서 한국 펜싱 역사상 첫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열린 남자 플뢰레 개인전서 김영호 로러스 펜싱클럽 감독이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것 이상의 값진 수확이었다.
김영호 감독과 함께 한국 펜싱계의 '전설'로 남아있는 이상기 코치는 정진선과 박경두에게도 최고의 스승이다. 정진선은 "코치님은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여러 모로 도움을 많이 주신다"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조언도 해주시고 정신적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박경두에게는 더욱 특별한 존재다. 이상기 코치는 대표팀 코치이기 이전에 소속 팀인 익산시청의 감독이다. 벌써 호흡을 맞춘 지도 4년이라는 시간이 넘게 흘렀다.
자신의 멘토로 주저없이 이상기 코치를 꼽은 박경두는 "코치님과 마음이 잘 통한다. 정신적으로 큰 의지가 되기 때문에 정말 좋다"며 "같이 훈련을 할 때면 '나는 왜 아직도 코치님처럼 경기를 하지 못할까'라는 오기가 발동해 코치님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는 "연습 경기를 할 때마다 코치님한테 졌는데 최근에 나한테 한 번 진 뒤로는 연습 게임을 안 하신다"고 농담을 던질 만큼 이상기 코치와 각별한 사이다.
▲ 과감한 승부수
대부분의 운동이 그렇듯 펜싱도 실전 감각이 중요한 종목이다. 특히 큰 대회를 앞두고서는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진선과 박경두는 실전 감각 대신 모험을 택했다.
이들은 오는 6월에 있을 2개의 국제대회에 모두 불참한다. 올림픽이 임박한 시점에서 실전 감각을 쌓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기회를 과감히 포기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력 노출을 최소화하고 남은 시간 동안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다. 박경두는 완연한 상승곡선을 그리다 최근 들어 다소 주춤하고 있다. 유럽 선수들에 비해 부족한 기술이 발목을 잡았다. 이상기 코치는 "경두는 단신(176cm)에도 불구하고 목표도 뚜렷하고 승부욕이 상당히 강하다. 하지만 유럽 선수들에 비해 기술이 단조로운 편이라 전력 노출이 많이 되면 될수록 불리하다"고 대회에 나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정진선은 그동안 대회에 나가느라 기초체력 훈련을 소홀히 한 탓에 지난해에 비해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기본적인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셈.
이상기 코치는 "진선이가 기본적인 체력이 달려서 움직임도 둔해지고 자신이 갖고 있는 기량을 100%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최소 8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데 6월에 있는 대회에 나가면 그럴 시간이 없다"며 남은 시간 동안 체력 훈련에 열중할 것임을 밝혔다. 이에 대해 정진선도 "힘과 스피드를 길러야 한다"며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과 러닝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있다"고 두 주먹을 불끈쥐었다.
이상기 코치는 "두 선수의 훈련 파트너로 매번 다른 선수들을 택해 새로운 기술을 접할 수 있게끔 하고 있다"며 "7월에는 실업팀 선수들을 초청해 연습 게임을 가질 계획이다"며 실전 감각 유지에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음을 밝혔다.
▲ 30명 중 25명이 메달 후보
"올림픽에 출전하는 30명의 선수 중 25명이 메달을 딸 수 있는 후보다. 올림픽 메달 획득은 최상의 컨디션, 체력, 정신력, 기술을 바탕으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욕심을 버렸을 때 만이 가능하다"는 이상기 코치의 말처럼 절대 강자도 약자도 없이 남자 에페 개인전서는 모두가 메달을 딸 수 있는 후보들이다. 바꿔 말하면 얕잡아볼 수 있는 선수들이 없다는 것.
그 중에서도 한국의 가장 큰 경쟁자는 우월한 신체 조건과 기술이 돋보이는 유럽 선수들이다. 세계랭킹 10위 안에 드는 선수 중 박경두와 카자흐스탄 선수 1명을 제외하곤 모두 유럽 선수일 정도로 메달 획득을 위해서는 반드시 유럽의 벽을 넘어야 한다. 정진선과 박경두도 "프랑스, 이탈리아, 헝가리, 에스토니아 등 유럽 선수들이 가장 큰 라이벌이다"며 유럽 선수들에게 강한 경계심을 나타냈다.
정진선은 4년 전 베이징 올림픽서 실패를 맛봤다. 2008년 당시 세계랭킹 4위였던 그는 32강, 16강전서 승승장구하며 8강에 진출했지만 메달이 눈앞에 놓이자 욕심을 이기지 못했고 결국 11-15로 패했다. 쓰라린 아픔을 경험한 만큼 이번에는 모든 욕심을 내려놓았다. 정진선은 "베이징 때와는 달리 부담감이 없이 마음이 편하다"며 "메달을 꼭 따겠다는 생각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할 생각이다"고 한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이에 반해 박경두에게 런던은 첫 올림픽 무대다. 그는 최근 두각을 나타내며 세계랭킹 5위에 올랐지만 2009년에 태극 마크를 처음 달았을 정도로 뒤늦게 펜싱에 눈을 뜬 늦깎이 스타다. 꿈에 그리던 첫 올림픽 출전이라 거는 기대도 남다르다. 박경두는 "모든 선수들이 꿈꾸는 무대인 올림픽에 출전하게 돼 정말 기분이 좋다"며 "주변에서도 응원을 많이 해줘 목표 달성을 위해 강도높은 훈련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진선과 박경두의 얼굴에는 어딘지 모를 자신감이 묻어났다. 아우 박경두는 형 정진선의 장점으로 강인한 정신력을 첫손에 꼽았다. 그는 "진선이 형은 자기관리가 철저한 데다 마인드 자체도 긍정적이고 승부욕도 강하다"고 말했고, 정진선도 "경두는 체력과 힘이 좋고 위기관리 능력도 뛰어나다"고 아우를 치켜세웠다.
2009년부터 대표팀서 한솥밥을 먹다 보니 서로의 단점에 대해서도 명확히 알고 있다. 정진선은 "경두가 생각이 많다 보니 쉽게 이길 수 있는 게임도 어렵게 끌고 가는 경우가 많다"며 "한 가지 기술이 잘 먹히고 있는데 다른 기술을 쓰다가 역공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선제 공격을 하자 박경두도 "형은 운동 신경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다"고 맞받아쳤다.
결전의 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 에페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노리는 정진선과 박경두는 이날도 어김없이 칼을 휘두르며 굵은 땀방울을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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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선-박경두(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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