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롯데 자이언츠 양승호 감독이 많이 듣는 말 가운데 하나는 이것이다. "2차 드래프트 때 김성배 안 데려왔으면 어쩔 뻔 했어".
시련을 넘어 이제는 팀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전력으로 자리 잡았다. 김성배(31)는 지난해 말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두산에서 롯데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처음엔 40인 보호선수 명단에 들지 못했다는 생각에 좌절도 했고 팔꿈치 통증으로 전지훈련 명단에서 제외되는 등 시련을 겪었으나 지금은 롯데엔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됐다.
롯데 불펜의 핵심전력으로 떠오른 김성배는 올 시즌 23경기에 출전, 19⅓이닝을 소화하며 1승 2패 5홀드 평균자책점 2.79를 기록 중이다. 볼넷이 4개밖에 안 될 정도로 제구력이 안정됐으며 WHIP는 0.72, 피안타율은 1할5푼2리에 그치고 있다. 양 감독은 25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김성배는 볼 끝이 지저분해서 타자들이 좀처럼 공략을 못 한다"면서 "앞으로는 김사율 바로 앞에 나오는 셋업맨으로 쓸 것"이라며 좀 더 중용할 뜻을 밝혔다.

▲ 데뷔 첫 무사 만루 무실점, "타자들 생각했다"
그리고 25일 두산전에선 무사 만루를 무실점으로 틀어막는 괴력투를 선보였다. 8-2로 크게 앞선 8회, 마운드에 선 이명우가 허경민, 오재원, 윤석민에 연속안타를 허용하며 무사 만루에 몰렸다. 점수 차가 벌어진 상황이지만 만약 실점을 한다면 경기 후반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
이때 마운드에 오른 김성배는 첫 타자 최재훈을 5구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하더니 김재호는 포수 파울플라이로 잡아냈다. 김성배의 최고구속은 140km를 갓 넘길 정도였지만 변화가 심한 공에 두산 타자들은 도무지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무사 만루에서 무실점으로 아웃카운트를 2개 잡은 김성배는 마지막으로 두산 입단 동기였던 이종욱을 맞아 볼카운트 3볼 1스트라이크까지 몰리기도 했지만 좌익수 뜬공으로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무사 만루를 무실점으로 막아낸 것이다.
이날 활약을 포함해 올 시즌 만루에서 김성배의 성적은 1⅔이닝 2탈삼진 무실점으로 단 한 점도 실점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만루의 사나이'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롯데는 9회 추가 2실점하며 두산에 8-4로 승리를 거뒀다. 만약 김성배가 8회 실점을 했다면 경기 결과는 어떻게 흘러갔을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경기가 끝난 뒤 롯데 더그아웃은 김성배에 대한 칭찬으로 가득했다. 외국인투수 쉐인 유먼은 김성배를 가리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직구, 투심, 슬라이더 모두 최고였다. 우리 팀 최고의 피처는 성배"라고 감탄했다. 김성배는 쑥스러운 듯 "타자들이 오랜만에 점수를 많이 내 줬기 때문에 더욱 잘 막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면서 "점수차가 컸기에 솔직히 한 점도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보다는 한 타자 한 타자 잡자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특히 김성배는 "데뷔 후 처음으로 무사 만루를 무실점으로 막았다"면서 "타자들이 이만큼 점수를 올려 줬기에 일단 뒤집히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던진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라고 덧붙었다.
▲ 이제는 셋업맨으로, "좀 더 신경을 날카롭게 세울 것"
김성배는 친정팀 두산을 상대로 특히 강하다. 올 시즌 두산전 3경기에 나선 김성배는 3⅓이닝동안 단 한명의 주자도 출루시키지 않았다. 특별히 전 소속팀이라고 의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두산전만 등판하면 더욱 편한 느낌이다. "경기 전에도 두산 더그아웃에 잠시 갔었다. 그런데 다들 '롯데 가서 잘 하고 있으니 정말 기쁘다'라고 응원을 해 줘서 고마웠다"는 게 김성배의 설명이다.
이제까지 김성배는 불펜에서 주로 우타자를 막는 역할에 충실해 왔으나 앞으로는 마무리 김사율 바로 앞에 등판하는 셋업맨으로 활약할 예정이다. 이미 경기 전 양 감독은 "김성배를 셋업맨으로 쓸 것"이라고 공언한 상황.
여러모로 김성배에게 양승호 감독은 은인이나 다름없다. 그는 "감독님께서 (셋업맨으로) 중용해 주겠다고 말씀하셔서 감사할 따름"이라면서 "믿어 주신것에 반드시 보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성배가 롯데 유니폼을 입은 것도 양 감독의 선택이 결정적이었다. 그때문인지 김성배는 "감독님이 두산에 코치로 계실 때부터 눈여겨 봐 주시다 2차 드래프트에서 바로 선택하셨다고 들었다. 감독님 덕분에 새로운 야구인생이 열린 셈"이라고 말했다.
올해 김성배의 최대 목표는 일단 안 아픈 것이다. 팔꿈치 통증에서 해방되고 나니 올해 야구가 정말 잘 된다. 그리고 이제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 "팀에서 더 중요한 자리를 맡았다. 마운드에 올라 좀 더 신경을 날카롭게 세워서 꼭 감독님의 믿음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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