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활약할 수 있다는 점, 충분히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의욕을 심어줄 수 있는 본보기가 되고 싶습니다”.
사실 그는 전 소속팀에서 운이 없던 투수였다. 볼 끝이 지저분한 만큼 코칭스태프가 기대를 걸었고 동료들도 그의 실력을 인정했으나 갑작스러운 부상이나 일정치 못한 투구 주기로 인한 투구 밸런스 붕괴 등으로 컨디션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이적한 그는 이제 새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되었다. 롯데 자이언츠 사이드암 김성배(31)가 그 주인공이다.
배명고-건국대를 거쳐 지난 2003년 두산에 입단했던 김성배는 2005년 8승을 거두며 팀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기여했던 투수였다. 그러나 투구 밸런스가 제대로 유지되지 못하면서 구위의 기복이 심한 경우가 많았고 결정적인 순간 부상까지 찾아오며 제 위력을 선보이지 못했다.

2009년에는 발등 골절상을 입었고 지난 시즌에는 팔꿈치 통증을 참고 던지다 악화되어 고전한 바 있다. 팬들이 알지 못하는 불운이 굉장히 많아 김성배는 두산에서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냈다. 동기생 손시헌, 정재훈, 이종욱, 김상현 등에 비해 1군에서 확실히 주목받지 못했다는 점도 김성배를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다.
결국 김성배는 지난해 11월 2차 드래프트서 두산의 40인 보호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다행히 두산 코치 시절 그의 잠재력을 알고 있던 양승호 롯데 감독의 기대 속에 1라운드서 롯데에 지명받았다. 올해 초에도 팔꿈치 통증으로 인해 일본 가고시마 2차 전지훈련에 지각 합류했던 김성배다.
그가 지금은 FA로 이적해 온 ‘여왕벌’ 정대현(34)의 무릎 부상 공백을 막아내고 마무리 김사율(32)에게 바통을 잇는 셋업맨으로까지 격상되었다. 올 시즌 김성배의 성적은 23경기 1승 2패 5홀드 평균자책점 2.79(26일 현재). 피안타율 1할5푼2리에 이닝 당 주자 출루 허용률(WHIP) 0.72로 세부 스탯이 더욱 뛰어나다. 매 경기 2이닝 이하로 팀에서 경기 당 투구 비중을 많이 주지 않은 덕택에 특유의 지저분한 볼 끝이 제대로 효과를 보고 있다.
양 감독은 최근 김성배에게 셋업맨으로서 특명을 부여했다. 선수 본인은 “저도 직접은 못 듣고 기사로 확인했어요”라며 웃었지만. ‘대단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라는 이야기에 “아직 시즌 반도 안 되었는데요”라는 말로 쑥스러워한 김성배는 지난 25일 친정팀 두산과의 경기서 무사 만루 위기를 무실점으로 막아내기도 했다.
“어차피 무사 만루에서 마운드에 올랐으니까요. 점수 차도 8-2 6점 차였던 만큼 ‘한 두 점은 줘도 괜찮다’라고 생각했는데 무사 만루를 막아냈네요”.(웃음)
지난 14일 김성배는 동기생 김상현의 부친상 때 이튿날 부산 홈 경기임에도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장례식장을 직접 찾아 친구의 슬픔을 달래기도 했다. 워낙 착한 선수였던 만큼 전 소속팀 두산 선수들도 김성배가 새 소속팀에서 펼치는 맹활약을 축하해주고 있다. 쑥스럽게 웃던 김성배는 2차 드래프트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이 달라졌다. “다음 2차 드래프트가 언제 열리지요”라며 질문한 김성배. 두 번째 2차 드래프트는 2013시즌이 끝난 후 열린다.
“지난해 처음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 새로 이적한 선수들 중 앞으로 좋은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는 또 더욱 잘해야지요. 내년 말 2차 드래프트가 열릴 때 또다시 40인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 지명을 기다릴 선수들이 있을 테니까. ‘버림받는 선수’가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2차 드래프트의 수혜자가 되어 그들의 본보기가 되고 싶습니다”.
세상에 쓰임새가 없는 사람은 없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기회를 잡고 자신의 재능을 얼마나 바르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다르게 보일 뿐이다. 새로운 기회를 잡고 잘 살리고 있는 김성배는 자신의 맹활약이 더 오래 지속되길 바라는 동시에 그 모습이 2년 후 누군가에게 동기 부여책이 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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